그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3개월 동안 작업실을 빌려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는 한 일이 없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그림을 세 점이나 그려내기도 했고 캔버스가 떨어지자 나무판자에 그림을 그렸고, 나무판자가 떨어지자 판지에도 그렸다. 1901년쯤에는 60여 점의 그림이 완성됐다. 천 개인전 물량이 쌓였다.
고야, 벨라스케스 같은 스페인 화가와 유사한 그림이 있는가 하면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그림, 툴루즈 로트렉의 화풍, 고흐의 과감한 윤곽선을 닮은 그림도 있었다. 그야말로 당대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모방작으로 꾸려진 그림들이 전시되었다. 당시 파리 최고의 화상(畫商) 앙부루아즈 볼라르 갤러리에서 열린 한 전시회의 풍경이다.
무명 파카소의 설득은 통했고 볼라르는 이 모방 작품 투성이의 전시를 용인했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파카소 사후에 “피카소 되기”라는 이름의 전시가 유사한 그림의 목록으로 바너비 라이트라는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2013년 런던 중심부의 코톨드 갤러리에서 열렸다.
피카소가 입체파의 새 지평을 열기 전에 죽었다면 그는 그저 그런 화가에 그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카소는 파블로 피카소 자신이 되고 싶었지 누구를 모방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화가에 그치는 삶을 원하지 않았다. 모방은 기술만으로 통할지 몰라도 독창적인 상상력은 자기만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의 상상력은 이른바 '파랑의 시기'를 거치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친구 케사게마스가 자살하고 충격에 휩싸였던 그는 성 라자르 교도소를 방문하고는 또다시 깊은 우울에 빠진다. 어린 자녀와 함께 수감된 어머니, 매독에 걸린 채 수감생활을 하는 여인... 파카소는 우울을 나타내는 파랑 색조의 그림으로 이 시기를 견딘다.
이후 피카소는 석판화를 통해 그림의 단순화 기법으로 독특한 화풍을 만든다. 그의 황소 석판화 작품의 변천이 이를 말해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 교육을 위해 이 그림을 활용했다고 한다. 애플 아이폰의 단순한 디자인을 위한 영감은 피카소에게서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즐겨 쓴 “평범한 사람은 모방하고 천재는 홈친다.” 는 말도 피카소가 원조이기에.
피카소의 선(線), 로스코의 심플함. 그 단순함을 얻을 때까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생각하고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을 떠올린다. 천둥과 벼락과도 같은 창작의 고통을 겪지 않고 모방으로만 자기 것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파카소처럼.
뉴턴은 먼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세상을 보았고, 피카소도 모방하며 창조의 길을 찾았다. 가을에 익어가는 감이며 대추는 저 홀로 붉어진 과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그 안에는 무수한 천둥과 벼락이 들어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