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속이는 삶에 굴복하지 말라

차이코프스키와 푸슈킨을 생각하는 새벽

by 호림

학창 시절 대단한 '문청문소’ (문학청년과 문학소년을 이렇게 줄여 말하던 때가 있었다.)가 아니었더라도 푸슈킨의 시 한 구절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푸슈킨의 시구는 현실의 좌절과 시름에 어느 정도는 진통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푸슈킨이 이 시를 쓴 것은 불과 26세에 어느 짝사랑하는 여인의 아픔을 위로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청년 시인의 삶을 달관한 듯한 태도와 창작력에 세계인들이 놀랐고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번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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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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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이 이 시를 쓴 26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그 나이에 어디서 이런 삶에 대한 달관과 관조의 자세가 나왔을까 하는 존경심과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아마도 이 시는 러시아의 천재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에게 헌사해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1893년 54세로 세상을 뜨게 되는데 사인은 콜레라 감염이라는 설과 자살설이 있다. 최근에는 자살설에 무게가 실리는데 그 이유로는 당시로선 '비창'에 대한 반응이 시원치 않은 것에 실망했다는 설도 있고, 또 한 가지는 당시 귀족인 스텐복크 훼르모 공작 조카와의 동성애 관계가 알려지면서 강요된 자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콜레라로 어머니를 잃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어머니를 따랐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상실감과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결국 다른 여인을 가까이하지 못한 채 동성애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안토니나 이바노브 밀류코바와의 결혼 역시 그녀가 일방적으로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한 나머지 동성애를 폭로하겠다는 그녀의 협박에 못 이겨 억지로 한 것으로 자살소동까지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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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인생에서 또 한 사람의 여인이었던 나데츠다 폰 메크 부인은 그를 14년 동안이나 후원하면서 막대한 금전적 비용을 지불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 사이에 오고 간 편지만 무려 1,000여 통이 되었다고 하니 그 절실한 감정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푸슈킨의 또 다른 시 한 편을 감상해본다. 이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도 좋았을 법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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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알렉산드르 푸슈킨


시인이여! 민중의 사랑에 연연해하지 말라

열광하는 칭송도 한순간의 술렁임일 뿐이니

어리석은 자의 관심과 차가운 군중의 비웃음을 듣더라도

그대, 의연하고 침착해야 한다


그대는 황제, 고독하게 살아라

자유의 길을 가라,

자유로운 지성이 그대를 이끄는 대로

사랑하는 사상의 열매를 영글게 하며

고귀한 위엄의 보상도 구하지 마라


보상은 그대 자신에게 있으니

그대 자신이 최고의 심판자니라

그대는 자신의 작품을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평할 줄 아나니

그대는 그것에 만족하는가

의연한 예술가여?


만족하는가

그렇다면 군중의 비판 따윈 내버려두라

불타오르는 그대 제단에 침을 뱉어도

아이 같은 시샘으로 그대의 제상(祭床)을 흔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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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고독한 영혼을 위로하기에 좋을듯하다. 푸슈킨의 시를 소비에트 공산당에서는 한 때 청산 대상 문학작품의 목록에 올리기도 했지만, 세계적으로 러시아 시 중에 가장 사랑받고 있다. 이런 보편적 생명력을 지닌 시를 지은 시인은 38세로 단명했다. 푸슈킨이 죽었을 때 수만 명의 인파가 장례행렬에 몰려들어 반란으로 의심한 황제가 긴장할 정도였다고 한다. 푸슈킨의 삶은 너무나 짧아서 허무할 정도의 비창이다. 그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자 그 상대인 귀족과 결투를 신청했던 푸슈킨은 총상을 입었고 끝내 총상의 여파로 죽음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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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대한 '비창' 과도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삶은 그를 속이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슬퍼했을지는 몰라도 노여움에서 헤어 나와 불멸의 선율을 남겼다. 짧은 인생이 결코 보상하지 못할 긴 예술로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이겨냈다. 비록 그가 견디고 참았던 설움의 날이 기쁨의 날로 변한 것은 그의 생전이 아니라 사후였지만 그가 만든 선율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지금도 내게 새벽의 정적을 깨우는 배경음악을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