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체험의 힘

by 호림

미학과 예술철학은 철학의 한 분과 학문으로 언뜻 혼용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미학은 포용하는 범위가 훨씬 넓다. 예술 장르에 대한 가치와 품평에 동원되는 예술철학이 제한적이라면 미학은 그 영토가 엄청나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요리나 화장술 같은 모든 영역에 동원될 수 있다. '에스테틱'이라는 말은 미용이나 화장품 산업에서 다양하게 변용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수전 손탁은 동원되지 않은 순수함을 미적 향수의 본질로 보았다. 우리가 방학숙제를 위해 갤러리에 갈 수도 있고 콘서트홀을 갈 수 있지만 그것이 미적 활동이 아닌 노동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의 삶은 미적 체험과 노동 어딘가의 사이를 부단히 오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많은 행위 중에는 노동을 넘어 미적 체험을 통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 행위의 편차는 실로 엄청나다. 중세나 봉건시대의 귀족은 사실 노동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면서 유산이나 하층민의 노동에 의존해 살았다. 반면에 지구상에는 많은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미적 체험이나 삶의 가치는 거의 팽개치다시피 한 이들도 많다. 이러한 삶은 가난한 시절의 많은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초상이었다.

돈벌이에서 해방된 삶과 노동으로 근근이 이어가는 삶 어딘가의 사이에 우리들 대부분이 위치해 있다. 유사한 환경에서도 미학적인 가치를 찾기 위해 음악과 미술 같은 미적 체험에 자신을 노출하고자 하는 이가 있고 그런 일들은 하등 생계에 도움 안 되는 사치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삶이 가치가 있다고 쉬이 속단할 수는 없다.


예술의 미적 가치가 세상의 모든 가치를 압도한다고 강변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예술의 가치를 아는 이의 언어와 기품은 내밀한 미적 체험의 효과 때문인지 달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흔히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거칠게 나누기도 하지만 그런 경계에 철조망이 단단히 쳐진 것은 아니다. 지나친 고고함이나 상업성에 빠진 속물성 양 극단은 언제나 작품의 미적 평가를 가로막는다.


연말연시는 언제나 소박한 공연에서부터 다양한 볼거리가 넘친다. 미적 체험으로 다져진 차분한 내면의 힘을 자양분 삼아 새해에 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성취했으면 한다. 미적 체험은 현실을 입체적으로 돌아보고 새로운 꿈을 잉태하게 만들 수도 있기에.


음악은 베일을 펼치는 꿈.

감정 표현이 아닌 감정 그 자체다.

-클로드 드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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