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잃은 슬픈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해 지옥의 신들을 감동시켰고 슈베르트는 실연의 상처를 연가곡집에 담았다. 차이코프스키는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로 톨스토이가 눈물을 흘리게 했고 슈만은 클라라에게 사랑의 선율로 마음을 얻기도 했다.
분명 음악은 떄로는 말로 표현하는 감정보다 더 강렬하게 심금을 울린다. 또 우리 귀로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듣고 느끼게 만든다. 음악은 소리와 침묵을 오가는 예술이다. 공기의 진동을 통해 채움과 비움을 요리하는 것이 음악가의 일이다. 시인이 강렬한 압축의 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듯 선율의 힘은 우리의 내면을 흔든다.
장 자크 루소는 음악을 자연에서 들을 수 없는 침묵이나 고요 같은 것도 표현할 수 있어서 놀라운 예술로 보았고 그런 면에서 회화를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회화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할 수 없지만 음악은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 추상표현주의나 많은 화가들은 사물을 캔버스에 옮기는 데 나아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이미지를 상상해서 표현하는 것으로 나아갔지만 18세기 중후반에 활약한 루소의 말은 재정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니체나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는 작곡이나 악기 연주에도 일가를 이루며 음악을 궁극의 예술로 칭송했다.
음악도 표제음악이나 절대음악으로 영역을 나누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언어처럼 명쾌하게 의미를 담지 않기에 그 음악이 포용하는 감정은 모호하다고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면으로는 표현의 무한한 영토로 인해 포괄하는 감정의 범위가 언어보다 훨씬 넓다고 할 수 있다.
멀리는 아리스토텔레스 가까이는 바움가르텐 이래 예술철학, 미학의 영역에 부단한 연구자들이 벽돌을 쌓아왔기에 음악과 미술을 바라보는 해석의 지평도 풍부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창작자들이 이런 미학이론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따라 펜과 붓을 들고 오선지와 캔버스에 풍부한 예술언어를 담았기에 우리의 정서생활은 풍요해졌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