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보고 생텍쥐베리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 생텍쥐베리
우리가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을 추구한다지만 천양지차의 삶이다. 꿈꾸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던 창백하고 주름진 얼굴, 의무만 남았던 삶, 게다가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시한부 인생이다. 이 사나이는 아내 사망 후 아들을 희망으로 삼고 살았으나 그 아들마저도 실망을 안겼고 자신의 아픔을 안아줄 수 있는 가족의 품은 없었다. 평범하지만 생기발랄한 직장 후배 여성에게서 살아가는 의미를 별견하기도 한 이 시청 공무원은 우연히 만난 젊은 남성 작가에게 기대며 술과 여성을 찾기도 한다.
이 남자는 자신이 규제를 풀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들어낸 놀이터에서 스코틀랜드의 민요를 부르며 차가운 주검으로 변했다. 장례에서 아들과 동료들이 뜨겁게 흘리는 눈물이 한 남자의 깊은 고독의 심연에 다다를 수 있을지 물음표가 떠오른다.
<리빙 어떤 인생>, 영화는 한 남자의 죽음에서 깊은 울림을 남기는 데는 다소간 아쉬움이 있었다. 일본의 원작과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아우라만큼이나 동서양의 문화차이가 커서 그 정서의 디테일을 정확히 반영하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함께 떠오른 영화는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의 명연이 돋보인 <버킷리스트>였다. 이 영화는 내 청춘의 한 페이지에서 반짝이는 추억이기도 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까 고민할 때 그토록 난해했던 철학책에서 찾지 못한 것들을 영화에서 어렴풋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회할 거라곤 한 점도 없는 꽉 찬 인생, 예술로 승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삶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의미를 찾는 삶은 가능할 것이다. 아니 그 의미는 반드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의미가 없는 삶, 그건 아마도 털 없는 원숭이의 삶에서 한걸음도 진화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1954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영화 <길>은 삶의 의미를 묻는 걸작이다. '가련'과 '비참'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듯한 여인 젤소미나가 삶의 의미를 묻자 마르코라는 사내는 이렇게 말한다.
"네 인생에도 의미가 있어, 의미가 있어야만 해! 이 돌멩이에도 의미가 있듯이 말이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울림이 남는 명대사다. 그 의미는 아마도 생텍쥐베리가 간파한 저 푸른 바다에 대한 동경심과도 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