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과 컨텐츠는 한 쌍이다. 컨텐츠를 구상하면서 플랫폼의 형태가 디자인 되고, 플랫폼을 구현하면서 컨텐츠의 형식을 잡아가게 된다. 플랫폼의 힘을 받지 못하는 컨텐츠는 방향성이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아이디어에 그친다. 페이스북의 글들은 매일 매일 새로운 '글타래'를 엮어낼 수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해진다. 글타래는 패턴과 개성을 얻는다. 페이스북 피드는 글쓰기와 글읽기의 압박감을 줄일 수 있도록 그 길이를 적당히 쪼개주는 역할을 한다. 다소 긴 글도 읽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 한계는 쓰는 사람, 읽는 사람 모두에게 컨텐츠 접근성을 높인다. 프로필은 스토리텔링에 시너지를 낸다. 페친과 좋아요 시스템은 컨텐츠 피드의 구조를 만드는 핵심이다.
플랫폼을 구상하다보면 최종적인 컨텐츠의 상이 없이 로직을 설계하는데 매몰될 때가 있다. A와 B가 일단 논리적으로 이어지기만 하면 의미가 창출될거라고 막연히 믿는다. 플랫폼을 만들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A와 B라고 하는 노드를 탁상공론으로 떠올린 후 거창하게 포지셔닝 시킨 다음, 일필휘지로 플랫폼 설계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설정된 노드는 PoC나 MVP를 거쳐 검증해야 하는 가설로 취급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실천적 시장 조사이다. 빠른 검증 후 실패했다고 판단되는 노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플랫폼 설계 시 또 자주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세상 떠올린 모든 노드를 다 끌어안으려고 하는 욕심이다. 수용할 수 있는 노드의 갯수를 늘리면 스케일이 크고 비져너리한 플랫폼이 될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 플랫폼에서는 컨텐츠가 형식과 패턴을 갖추지 못하고 산산히 흩어진다. 디자인은 특정한 문제에 집중하여 그 솔루션을 합목적적이고 미적으로 가시화하는 기법인데, 모든 문제를 다 쓸어담아 가시화 하면 솔루션은 사라지고 문제들을 고스란히 병렬로 널어놓는 결과만 낳는다. 현대 미술로 승부를 볼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구조체 쓰레기를 정교하게 만드는데 비용을 투자하면 안된다.
특별히 플랫폼의 형태를 구상 하지 않더라도, 이미 형식이 완결된 컨텐츠가 있다면, 그 컨텐츠는 모이는 것 만으로도 플랫폼을 구성할 힘을 갖는다. 그런 컨텐츠들은 스스로 플랫폼으로 발전하도록 그냥 놔두면 된다. 내심 자기 컨텐츠를 꿈꾸는 플랫폼 설계자는 이렇게 이미 완성된 컨텐츠를 거부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내 설계도에 '맞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그 컨텐츠를 플랫폼 설계의 일부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구상하던 설계도를 바꾸어야 한다. 스케일을 키우고, 노드를 재설정하고, PoC의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컨텐츠는 가치에 이바지 하고 플랫폼은 확장에 이바지 한다. 요즘의 세상 사람들이 플랫폼을 통해 추구하는 컨텐츠는 다소간 정해져있는 듯 하다. 자기 정체성의 파급력과 영향력(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 절차의 생략을 통한 망각과 편리함(모빌리티/테크핀/배달), 레이턴시가 사라진 무제한 엔터테인먼트(구독 OTT), 내 생활의 품격을 높여주는 상품 큐레이션(버티컬 커머스). 즉, 커지고 빨라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고자 하는 것인데, AI, 메타버스, 클라우드가 흥하니 앞으로 이런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