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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Nov 02. 2021

제대로 된 기획이란 걸 하는걸까?

○○기획의 본질은, 기획 앞에 어떤 단어가 붙던지 간에 가시화, Visualization이 핵심이다. 가시화는 뭔가를 예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개념과 자원을 유의미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술, 비즈니스, 인간 모두에 관심이 많은 우리 즉, IT 바닥의 서비스 기획자들에게 프로덕트 가시화는 기획의 꽃이다.


서비스 기획자들은 대부분 본인의 오리지널리티가 빛나는 '발명형' 기획에 로망을 갖고 있지만, '가시화'를 핵심 과제로 본다면, 실전에서는 문제와 정보 그리고 자원의 '정리'와 '추상화' 역량이 발명 아이디어보다 훨씬 많이 요구된다. '정리'에는 반드시 디자인 철학이 수반되며, 디자인이 '되었기' 때문에 비전적 Visionary이고 또한 전략적일 수 있다. '추상화' 또한 Low-Level의 자원을 모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재배치 작업을 말하는데 이 또한 디자인에 해당한다. 다른 모든 서비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클라우드 플랫폼을 기획하다 보면, 그 자체로 완결된 제품에 해당하는 API를 모아 사용자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템플릿으로 제공해 줄 수 있는가가 기획 토의의 핵심이 된다. 과학적이면서도 미학적(합목적적) 접근이 모두 요청되니 역시 디자인의 문제이다. 


디자인은 문제를 고르고 발라낸 후, 솔루션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문제를 '누구'에게 의미있는 수준으로 추상화 하느냐에 따라 타겟 사용자와 경험이 결정된다. 팩트(이 정도만 되어도 다행이지만), 개인적 믿음, 문제들을 너줄너줄 아는대로, 시계열대로 '늘어놓은 것'은 디자인 되었다거나 고안되었다 평가할 수가 없다. 너줄너줄 늘어놓은 것은 타겟이 특정되지 못하는 예쁜 구조체 쓰레기가 되는데, 이를 두고 종종 '플랫폼 전략' 이라고 잘못 이름 붙기도 한다. 


여기까지 프로덕트 디자인과 기획에 대한 내 철학을 풀었지만, 시니어 PM으로서 나는 의구심의 한 가운데 있다. 예전엔 프로덕트 디자인 과정 및 결과물의 '과학적 엄밀함'에 꽤나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다. 무엇이 우리의 기획을 타당하게 하는가? 버틈업 디자인 방법론은 실전에서 체계적으로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을 지언정, 논리를 갖추는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시장의 정보, 데이터, 문제...와 같은 디자인 팩터 factor들에 과연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게 맞는지 회의감이 있다. 좌절감이라기 보다는 합리적 의심에 가까운데, 결국 팩터가 특정한 '사람', '커뮤니티', '인적 네트워크'를 <뿌리>로 해서 수면 위에 올라오고 바로 그게 <돈>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이 특정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이후의 디자인이란 그저 호혜적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들러리 정도의 역할이 아닌가?


그래서 어렸을 때는, 소수 몇 몇의 개인이 '시장을 대표'한다고 나서면 그게 그렇게 오만하게 보여서 싫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오히려 그게 일부 진실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적 디자인의 엄밀함과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사회의 실상 중 어디에 가중치를 주어야 할 지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나는 이게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인건지 세상을 확실히 알아가는 과정인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이러한 의구심이 나를 사업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끈다. 너무 오래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답을 내릴 수 있게 된다면 좋겠는데, 아마 대답을 구상 하는 것 역시 기획에 해당 되는 일일 것이다. 아마 그 분야를 사업기획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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