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버리는 착한 이타주의로 열심을 다하다 마침내 나가떨어지는
말 같지도 않은 책임감 때문에 자기 자신을 고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잔다르크는 일이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꼴을 보지 못하며, 주변 동료와 가치 있는 일감을 지키고 싶어하는 정의롭고 선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들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건의 명확한 당사자와 책임자가 있음에도 본인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는 데 익숙하다. 워낙 오래전부터 해결사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사건이 있는 곳에 틀림없이 소환된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순간적 분노와 논리적 말발, 깔끔한 정리 능력이다.
잔다르크는 특별한 직책이 없더라도 주변인들에게 은연중 리더십을 부여받는다. 늘 누군가를 보호하고, 조직을 대표하며, 남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느라 바쁘다. 이들이 나서기만 하면 골치 아픈 사안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므로 주변에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정작 문제의 당사자들은 벽 뒤에 숨어 있다가 상황이 끝나면 슬며시 나타나 감사의 커피를 산다.
퇴락하는 조직에 있는 잔다르크는 자신이 헌신한 조직과 동료들, 가치 있는 일감들을 홀로 꾸역꾸역 지키다가 에너지를 바닥내기 일쑤다. 자기 자신을 방어할 힘조차 다 떨어진 어느 날, 이들은 회의실에서 보스에게 선을 넘는 자기 표현을 한 후 회사를 뛰쳐나온다.
잔다르크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치 있는 일들은, 더 이상 맡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종료 수순을 밟는다. 잔다르크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동료들은 그의 빈 자리를 바라보며, 걔가 일 욕심이 참 많았지만 성격은 착했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조직의 한 시절을 굴려줄 다른 잔다르크를 기다린다.
단언컨대 조직에는 몸과 마음을 갈아 바쳐 헌신하고 지켜야 할 가치 있는 일 같은 건 없다. 우리의 순백색 잔다르크는 여러 번 같은 경험을 당한 뒤에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그들에게는 한때의 고난을 통해 잘 훈련 된 자신만의 조직 적응 시스템이 남게 되므로, 앞으로 그리 쉽게 무너질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