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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Dec 09. 2021

폭력의 진화

타인에게 ‘정직하라, 진실하라, 너 자신을 알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

나는 누군가를 등졌다. ‘자기 아닌’ 남들에게 끊임없이 진실을 강요해 묻던 사람이었다.  네게 진정성이 있느냐, 너는 너의 위치를 객관화하고 있느냐, 너는 너의 가능성을 제대로 펼쳐 보이고 있느냐, 너는 모든 사람과 솔직하게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등등, 그는 미성숙한 타인이 무대 위에서 사정없이 발가벗겨져 바닥을 드러내고 자신만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야, 참으로 훌륭하 게 성장한 것이 아니냐며 박수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지독한 투명성의 강요는 진화된 폭력에 다름 아니다.


내 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나만의 은밀한 인생 과제다. 세상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그것이 성스러운 삶을 향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무능력해, 그러나 무가치하지 않지.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게 나는 조용히 속으로만 이야기한다. 사명, 좌절, 자부심, 한계 같은 모든 것이 나만의 비밀이다. 다른 이가 아무렇게나 헤집고 충고하고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미리 알 수 없는 삶과 사회에 던져져 상처입고 지친 우리 인간은 자아의 핵을 뒤흔드는 결점을 수시로 숨기고, 시스템의 우산 밑에 숨어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삶을 선택한다. 누군가가 자신만의 동굴을 향해 몸을 돌릴 때, 내게 보이는 것은 뒷모습이지만 그들의 두 팔 안에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그들만의 ‘지킬 것’이 있다. 그 지킬 것이 헛된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그들의 견고한 등을 바라보며 한 발 짝  물러서는 것, 타인의 지킬 것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갖는 것이 ‘공존’의 현실적 의미 또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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