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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Dec 09. 2021

무례한 말

보스는 자신이 한 말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번아웃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대화 중에 ‘우리 회사는 너 같은 아이를 받아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너 같은 아이’에 대해서 며칠을 곱씹다가 그에게 다시 찾아갔다. 


“우리 회사는 착하고 모범적이라서, 저 같은 우울증 환자도 받아주어야 마땅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는 내가 어떤 의도로 질문하는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뒤이어 내가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얼른 미안하다고 한 후 그제야 이것저것 생각해보는 듯했다. 나는 그날 공감 능력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똑똑하게 알아채는 능력이 아니다. 타인의 인생 사건에 자신이 깊이 참여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나는 무례한 말에 대한 사과를 받아냈지만 회사를 대놓고 탓하지는 못했다. 그 당시 회사는 내 망가진 시간을 책임질 만한 적절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얼마간은 나와 타인의 개인적 성숙함에 의지해야 할 문제였다. 수 년이 지난 뒤에야 신경정신계 질병과 관련한 산재보험법 시행령이 발표 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인간성을 키우는 능력을 잃어버리면 법이 그 일을 대신하게 된다. 


아마 몇 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악랄한 가스라이팅의 정의와 처벌 수위도 법으로 정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렇지만 ‘너 같은 우울증 환자도 받아주어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위선적 가스라이팅은 수십 년이 지나도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하지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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