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
나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 ‘훌륭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 기준이 마땅치 않은 데다, 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깃발을 꽂았던 훌륭함의 토대는 항상 모래성 같아서 빠른 시간 안에 나를 배신하고는 했다.
우리는 누군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종종 나 자신에게도 훌륭함을 기대하며 채찍질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기대다. 우리는 정확하게 뭘 기대하는 걸까? 비열함, 저열함, 이기적임, 음흉함, 잔인함 따위 말고 좋은 것만 을 선택해온, 청정 지역의 인간을 알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만약 소망이 아니라면 원망일 것이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어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지만, 너는 그래야지. 네가 돈을 바라고 지위를 바란다면, 사랑을 바란다면, 너는 그래야지.
나는 늘 타인을 통해 자신을 파악했다. 항상 ‘어떤 사건이 터 지고 나서야’, ‘반성적으로’ 나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를 건다는 건, 훌륭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남에게서 훔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멋짐을 발견하고 싶다는 욕망, 거기에서 내 멋짐 또한 손쉽게 발견하기를 바라는 요행심이다. 그러니 늘 남에게 먼저 실망한 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저 다 같이 찌질할 뿐이라며 마음 편한 하향 평준화를 한다. 어떨 땐 그저 타인에게 실망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보다 더 낫다는 어이없는 결론을 내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인과이지만 인간은 거기에 스스로 속아 자족한다.
정직해지고 싶다. 훌륭하지 않아도, 다른 건 다 못한대도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해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겠다. 나도 내게 수백 번을 실망했지만 대체로 자랑스럽게 지냅니다. 나도 당신을 이용해 편리하게 훌륭해지고자 했고, 그러기 어려워졌을 땐 무슨 수를 써서든 합리화했어요. 우리는 그러려고 만난 거지요. 나에 대한 당신의 실망을 이해해요. 당신에 대한 실망감은 내가 알아서 수습할 테니까, 당신은 당신대로, 당신 나름으로 나를 잊고 살아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