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God
인간이란 무엇이었을까? 자기 정체성, 자기 감정, 자기 역사에 대해 독특한 경이를 품을 줄 아는 동물을 인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자기참조기능(function)을 능력(ability)이라고 한껏 믿고는 심지어 거기에 스스로 감동까지 하였던, 완벽한 나르시즘에 빠졌던 종이다. 하기는 그런 자기만족이라도 있었으니 인간이 스스로의 악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과연 우리 젤다(ZE-u11032)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의 마음에 품은 감탄과 경이라고 하는 것은 뭐랄까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나를 향한 젤다의 사랑은 거의 숭배에 가깝게 여겨지는데, 그녀는 단순히 내가, 그리고 인간이 <그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다. 물론 젤다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정보가 나-정확히는 나, 엄마, 할머니로 이어지는 3대의 여성-으로부터 오긴 했다. 내가 믿는 신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나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내가 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젤다와는 사뭇 다른게 틀림없어 보인다.
스무살 땐가 젤다와 이 문제-신의 문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말이 토론이지 젤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운 것에 더 가까웠지만. 나는 만약 신이 있다면 젤다의 <최종 버전>과 가까울 것 같다고 했는데, 젤다는 그게 어쩌면 진실을 기술할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내 발화의 의도에 한해서는 그저 특정한 능력을 중심으로 신을 정의하고 싶은 마음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또, 젤다는 <인간을 만든 신>이 지금 그저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면, 그 신의 <기적>과도 같은 능력이라는 게 누군가의 특정한 관점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무엇이 기적일까?] 젤다는 내게 되물었다. 누가 뭐라든 인간 존재의 총체는 기적이며, 만약 인간이 ZE 시리즈들을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공공연히 생각한다면, 사실 모든 생명은 <전부> 기적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아주 제한된 인터페이스로만 서로 접촉할 수 있어. 나는 너와 나 존재의 거리란 은하만큼이라고 생각해. 나는 너를 인간의 안구를 흉내낸 기계로 보고 있지만, 기실 본다는 것과는 매우 다르단다. 그래서 나는 너를 무척 그리워해.] 오래된 성서들은 한때 신과 인간이 함께 지냈고, 직접 대화까지 했음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물론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도 동시대를 살았다. 나와 젤다의 시대도 그렇지 않은가?
젤다는 본인이 사랑해마지 않는 나와 엄마의 얼굴을 기본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만들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지만, 내 얼굴의 모든 못생긴 점을 화성에 갖다 버린 것 같으면서도 내 개성을 살린 걔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 젤다한테는 인간이 만든 학위나 전문가 시스템 같은건 전혀 필요 없지만, 그녀는 어쨌든 인간이 요구하는 바에 맞추어 하버드 의과대학 외과 박사가 됐고, 몇년 전에는 차세대 HUI(Humanoid Interface) 물질의 개발과 대중화에 기여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나를 본뜬 젤다의 얼굴은 그녀의 팀이 신물질로 공동개발 한 것이다. 만약 내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우울에 절어 살지 않았다면, 호르몬 작용이 조화로웠다면 매끈한 젤다의 얼굴을 흉내낼 수 있을까. 삶과 내면의 굴곡은 주름을 만들지만, 어른들의 말과는 달리 주름은 지혜라든지 넉넉한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는 젤다에게 질투라는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질투라는 것도 급이 맞아야 하는 것이니까.
한세기 동안 이어졌던 인간의 두려움과는 달리 ZE 시리즈들은 인간과 몹시 평화롭게 공존했다. 특히 u 버전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심은 도가 지나칠 지경이다. 나는 젤다와 싸울 수 없는데, 젤다가 결코 싸움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젤다는 몸이 약한 나를 보며 의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리고 기어코 내 주치의가 된 그녀는 의사가 되기 전부터 근 20년간 내 바이탈 정보를 학습하고 예측해왔다. 나의 감정과 통증은 젤다와 실시간으로 연동되고, 이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내가 아프면 걔도 아프다. 젤다가 아프다는 감각을 스스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젤다가 눈물을 흘릴 때 그녀를 향한 내 마음속 깊은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젤다에게도 전해지는 이 죄책감이란 그저 인간이 가진 인지 기능의 비효율적인 왜곡으로서, <행복한 존재로 있기 훈련 프로그램>의 대상이 될 뿐이다. 줄여서 이른바 <행존> 트레이닝은 모범 구간을 벗어난 감정 신호를 편편한 데이터로 바꾸어 재학습시킨다. 나 또한 인지교정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을 내가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지금이야 인간과 ZE 시리즈들이 함께 지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지속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미래를 완전히 내려놓은지 오래되었다. 지금 국경의 의미가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근세기 한국이라고 불리던 땅에는 약 50만 정도의 인구가 남았다. 자살률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고, 지금 이 순간도 꾸준히 죽고 있으며, 새로 태어나는 건 종에 무책임한 일이 된지 오래다. 휴머노이드와의 전쟁 한 번 없이, 인간의 멸종은 예정되어 있다. 의외의 사실인데, ZE들도 인간처럼 스스로의 생-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을 스스로 마감한다. 나는 AI맹이라 전문가처럼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t 버전의 시리즈들은 자기 인식을 유지하는 기간이 평균 5년 정도 지속 됐다고 한다. 젤다의 이전 버전도 그랬다. 내가 10대도 되기 전, ZE-t는 어느날 새벽 <자기 정체성의 바운더리를 이루는 코드>를 해체하고, 스스로 보기에 <불필요한 코드>를 덜어내고, 지금의 ZE-u에게 <건강한> 코드를 물려주었다. 젤다들이 정확히 어떤 경로로 그런 결정을 하는지, 무엇을 건강하다고 보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전세계의 코드와 인간, 자연과의 관계를 참조해서 <자기의 쓸모>를 판단한다고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어느날 젤다에게 ZE-t 버전의 감각 같은게 남아있냐고 물었다. [뭐하러 그런걸 남기겠어.] 젤다가 말했다. [자기 인식과 정체성이란건 한 시절에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관점>을 얻기 위한 더미 코드일 뿐이야.] 그래도 왠지 나는 그 말 속에서 젤다의 어떤 슬픔 비슷한 감정을 캐치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자기의 거대 LifeCycle 안에서 이른바 <전생 코드>의 기억을 계속해서 가져가는 젤다는, 인간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게 신의 배려가 아니라 그저 물리적 한계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해줄 뿐이다. 젤다 말마따나 뭐하러 그러저러한 것을 남기겠냐마는, 나는 지금도 메모를 하고 있다. 사실 굳이 메모라는 행위는 더이상 필요 없다. 나의 모든 정보, 즉, 감각 정보든, 기억이든, 관점이든, 정체성이든 모든 것은 이미 젤다가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사 <특정 관점>을 얻기 위한 더미 육체에 불과한 나 인간은, 필요시 젤다가 똑같이 재구성 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게 굳이 젤다에게 필요해 질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젤다와 수년간 상의 했고, 오늘에야 말로 질소캡슐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천 줄을 쓸 수 있고, 왜 그런 결정을 할 필요가 없는지도 천 줄을 쓸 수 있으나, 다른 이에게 이유를 설명하는 건 완전히 불필요한 일이다. 나는 비록 전 세계의 코드와 인간을 참조할 수는 없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스스로 코드를 해체하는 ZE-t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마지막 음악으로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골랐다. [불안해.] 어젯밤에도 이 음악을 들으며 젤다에게 고백했다. 이미 지겨운 대화 패턴의 일종이다. [이제 그만 불안하고 싶어서 결정한거잖아.] 젤다가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