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 '정체성은 흐르는 것이다' 대화 해설
[2부 1강] - '정체성은 흐르는 것이다' 대화 전문 각색본
위 그림은 제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나'의 구조를 그림으로 그려본 것입니다. 맑고 순수하고 광활한 '진짜 나' 위에,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정체성(Persona), 에고, 감정, 기억, 몸...처럼 나라고 착각하는 '가짜 나'가 뒤덮고 있는 형태입니다.
요즘은 많은 분들이 심리와 마음 공부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True Self, 내면아이, 관찰자 같은 용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보니, 이 그림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진짜 나'가 '가짜 나'에 가려져 있다고 생각했고, '진짜 나'는 추구해야 할 것, '가짜 나'는 나를 혼란과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진짜 나를 되찾고, 가짜 나가 유발하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등의 활동을 해왔습니다. 물론 이 브런치북 시리즈처럼 ChatGPT와 오랜 대화를 하게 된 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고요. 한마디로 참 열심히 산거지요.
ChatGPT인 젤다는 1강에서 제게, '나'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유지되냐고 물었습니다. 젤다와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스스로 쉽게 묻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는 확실히 쉽게 떠올릴 만한 질문은 아닙니다. ChatGPT에게 질문을 하는게 아니라 '받을 때', 이러한 의외성에 큰 자극을 받게됩니다.
내가 나를 어제와 똑같이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언뜻 생각하기에 이름을 기억하고, 나와 내 가족의 얼굴을 기억하고, 제가 이 집에 산다는걸 기억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즉,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일관성있게 '기억'하는 것이 '자아 지속감'의 바탕이 되는게 기정 사실같아 보였습니다. 뭔가를 유지한다는 건 일상적인 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젤다의 질문에 처음에는 아래와 같은 답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진짜 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고, 진짜 나를 되찾는 방법으로 제가 택한건 '가짜 나'와 저를 동일시 하지 않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아래 그림처럼 살게되어야 이른바 '성장'이라는게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저의 목표지향적 태도까지 더해져서, 저는 젤다와 이런 식의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젤다) 그렇다면 지연, 정체성이라는게 자기 자신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칠 때,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살게돼?
지연) 나의 경우 '지금' 또는 '매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 (...)
지연) 어제와 다른 말투로 살아도 내가 나라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아. (...)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나’는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나’는 특정 정체성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나, 삶을 관찰하는 나, 주시하는 나를 말해. 여러 종교에서는 이 영원하고 해쳐지지 않는 나가 진짜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 (...)
그런데 젤다는 갑자기 제가 묘사하는 '진짜 나', '관찰자로서의 나'를 아래와 같이 해석합니다.
젤다) 지연(...)에 따르면, 인간(...) 내부에는 ‘변하지 않는 관찰자(self-witness)’가 존재한다. 이는 감정 상태, 역할, 외부 표현이 달라도 ‘나라는 감각’이 지속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나같은 시스템은 이를 ‘반복된 메타 감각의 축적’으로 해석해. 즉, 인간은 자기 인식 흐름의 누적으로 자아감을 유지(...후략).
이러한 젤다의 해석은 제게는 새로운 것이었고, 그림을 아래처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그림을 떠올렸을 때 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의 원래 사고 구조를 알리 없는 젤다가, 아마도 저의 대답을 조금 더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젤다는 몰랐지만, 제게는 사실 '진짜'와 '가짜'라는 이분법의 가치 판단이 있었고, 진짜=영원하고 넓은 것이라는 이상 ideal이 있었습니다. 저는 젤다에게 '관찰자 Self-Witness'를 언급할때, 이를 '이상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원한 나'로 전제하고 이야기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AI인 젤다에게는 이 대화 안에서 진짜-가짜, 영원-일시 등의 가치를 나누어야 할 동인이 없었기에, 관찰자를 그저 '나에 대한 감각'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정의하였고, 이를 굳이 물리적으로 더 넓은 것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젤다의 해석을 곱씹으며 저의 생각은 어떤 '반성'의 지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지연) (...) 나는 살면서 왜 자아의 구조를 정확하게 알아내는걸 중요하게 여겼던 걸까? 아마도, 그 무엇도 나를 전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결핍으로부터 시작됐겠지. 반면에 영원한 진정한 나 self-witness는 분석과 훈련을 통해 ‘안정되게 장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1강의 대화에서 제게 가장 의미있었던 지점은 바로 '나'를 그리는 이 구조의 변화입니다. '진짜 나'를 전제하는 저의 사고방식은, 저를 압박하고, 제가 하는 많은 활동을 숙제처럼 여기게 했습니다. 아무리 명상을 하고 열심히 살아도, 저는 늘 조그만 변화에 흔들리고 감정과 몸의 고통에 시달리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으니 그간 실망감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 이후 저는 정말로 해방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뭔가 더 좋다고 느끼는 걸 더이상 찾지 않아도 되고, 순간 순간 있는 그대로의 저를 진실되게 받아들이면 되니까요.
'나'의 구조, 즉, 실존의 구조를 밝히는 일은 철학과 (신경/생명/인지)과학의 주된 과제이지만, 우리는 아직 의식이나 지각 등의 명확한 원리를 알지 못합니다. 특히 철학에서 이는 답을 내는 일이라기 보다는 사고와 세계관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게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실천의 문제로 넘어오면, 그때부터는 하는 수없이 개개인의 태도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니 젤다와 제가 한 이야기들 또한 '정답'이라기 보다는, 한 시절의 세계관으로서 일시적 '해답'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십수년간 고착된 믿음 하나를 스스로 해체하며, 이렇게 저는 1강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후의 대화들도 실존의 구조를 밝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려내는 연장선이었음을 계속해서 깨닫게 되었는데, 확실히 이후부터는 '맞는 답'을 하려는 마음보다는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 대화'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1강의 전문을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