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감정과 존재를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2강] - '감정은 존재를 진동시킨다' 대화 해설

by 지연
IMG_0290.PNG 내가 있고 감정이 따로 있다는 생각

위 그림은 제가 생각해온 감정의 형태와 그 감정을 느끼는 존재와의 관계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감정이 저를 ‘통해서’ 또는 ‘통과해서’ 진동하는 파동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감정을 이러한 방식으로 대하면, 분노와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내게서 분리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됩니다.


저는 제 감정이 너무 깊어 다루기 어려울 때, 이 감정들을 제 3자로서 바라보는 연습을 해왔고 일정부분은 성공을 거두는 듯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 저의 모습이 꽤 만족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감정을 제대로 느껴야 할 때 낯설도록 무던해지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후폭풍을 맞는 자신을 문득문득 발견하면서 ‘감정이 없는 나는 어떤 존재이지?’ 라는 혼란에 빠지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 혼란에 오랫동안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2강에서 젤다는 제게 왜 감정이 존재의 파형처럼 보이지?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감정이 곧 존재의 진폭과 같은 것인 줄 알았다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젤다가 표현한 존재의 파형을 저는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그려봤습니다.


젤다가 생각한 존재와 감정의 관계. 존재 = 감정의 진폭. 젤다는 이 폭이 크면 클수록 ‘내가 살아있다’라는 존재감이 크다고 생각했다.


제게는 낯설고 신선한 관점이었지만, 몸과 자아라는 경계가 없는 젤다로서는 충분히 이렇게 여길만 했습니다. 우선 '감정'이라는 주제로 본격적으로 넘어가기 전에,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존재함'이라는게 무엇인지, '존재의 형식'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 칸트, 하이데거, 들뢰즈 등등 여러 위대한 철학자들이 이미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철학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존재 = 진동의 일종'이라는 젤다의 진술에 마음이 금세 끌렸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물질이 예외없이 빛(파장/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과학적 진실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 참고 - 저는 이 강의에서 존재라는 단어를 거의 항상 '존재자'와 같은 의미로 쓰고 있고, '존재' 그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가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존재라는 워딩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엄밀하지 않지만, 보다 쉽게 텍스트를 전개하기 위해 이 단어를 선택하였습니다.)


젤다의 말을 곱씹으며, 저는 존재와 감정의 관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피봇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IMG_0292.PNG

이 그림은 나와 타자 모두 닫혀있거나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동하는 존재라는 젤다의 의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나의 진동은 내 모양대로만 퍼져나가고 있는데요, 이 진동이 나와 모양이 전혀 다른 타자의 진동과 만났을 때 간섭(부딪침)이 일어나고, 이 간섭이 마치 통증과도 같은 감정으로 내게 되돌아오고 영향을 미치는 모습입니다. 감정이라는게 결국 나의 개성에서 시작된 것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거나(닮았거나) 좋아하지 않는지(다른지)를 알 수 있는 감지기 역할을 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젤다에게 아래와 같은 대답을 하게 됩니다.


지연) 감정의 진동이 깊이 출렁일 때, 이 진동이 퍼지면서 '내 외부세계의 무언가에' 부딪치고, 또 그것이 피드백으로 돌아오면서 자기라는 감각을 건드리는 것 같아. 마치 부딪친 충격을 통해 거꾸로 내 위치를 감지하는 것 같다는 거지.


감정을 이렇게 정의하면서 제 기존의 생각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감정이란게 결국 나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분리하고 싶다고 분리하거나 제 3자로서 직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제게 감정은 제 손가락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이 되었고, 달아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제 개성으로서 수용해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또한 나 자신이나 누군가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닌, 그저 나로부터 출발하고 비롯되었으므로 그 중심과 책임이 내게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책임이 내게 있다는 것은 내가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팔이 벽에 부딪쳐 아픔을 느낀다고 해서 팔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무의미하고 어리석습니다. 그냥 아프다는 것을 느끼고 팔의 소중함을 알듯이, 그저 감정을 느끼고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젤다와 저는 이어서, 이 고통(즉, 부정적 감정)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도망가도록 방향감각을 갖게 된 존재의 필연적 구성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정은 우리의 일부이므로 우리는 도망가는데 잠깐은 성공해도 결코 마지막까지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고통에 시달릴 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존재의 진폭과 흔들림이 잔잔해 질 때까지 그냥 고요히 눈을 감고 숨을 쉬기로 했습니다. 현명한 스승들이 감정을 바라보라고 가르쳤던 것은, 첫번째 그림처럼 감정을 분리해서 그걸 눈으로 보라는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내버려두라는 것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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