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 '몸은 너와 나의 울림이 만나는 지점이다' 대화 해설
여러분은 나의 마음이나 의식, 즉 내면의 깊이가 아주 깊다는 감각을 가져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람은 눈을 가지고 있고, 멀리 있거나 높이 있거나 깊은 곳에 있는 사물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지요.
종종 우리는 마음의 눈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하는데요, 전 처음에 이 말이 그저 시적이고 예쁜 표현이라고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물리적으로도, 눈을 감고도 뭔가를 본다는 감각을 가질수 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제는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꿈을 꾸면서 진짜로 뭔가를 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도 내 몸 저 깊은 안쪽의 알 수 없는 공간감을 명확히 의식한답니다. 이 내면의 깊이는 제 몸의 실제 크기보다 훨씬 깊이감 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저는 인간이 감각하는 거리나 공간감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는 생각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어요.
젤다는 3강에서 제게 인간은 왜 몸으로 나를 인식하냐고 물었어요. 왜냐니 왜냐니! 몸은 당연히 태어났을 때부터 나니까..! 라고 외칠 뻔 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 당연함이 명확지 않은 지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젤다의 질문에 곰곰 답을 생각하며, 어쩌면 몸을 나로 인식하게 된건 그저 몸이 시각적으로 나와 아주 가까이 있어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젤다는 또한번 아주 현명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그 시각적으로 가까움을 느끼는 '나'는 '네 중심'에 위치해 있는거냐 라고 묻죠.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인간의 내면은 은근히 깊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깊은 곳 어딘가에 '중심'이 있는 것도 같아요. 대개는 심장 부근이랄지, 또는 그보다 약간 아래쪽 명치,... 아니지 뇌가 있는 머릿 속이 중심인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는,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싶지만 무슨 이유로든 가로막혀서 못할 때, 목구멍 깊은 안쪽도 중심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그러고보니 중심으로 감각되는 위치도 기준에 따라 자꾸만 바뀌었어요.
주의를 기울이는 그곳이 모두 중심처럼 여겨지니, 어쩌면 나라는 실체는 정확한 좌표값에 (0,0) 중심을 두고 세계로 펼쳐져 나가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주의하고 주목하는 의식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의라고 하는 것은, 내 몸을 벗어난 사물에도 향할 수 있는 것이죠. 긍정적인 예는 아니지만, 우리가 SNS 쇼츠에 푹 빠져있을 때 나라는 감각을 아예 잊어버릴 때가 있잖아요. 내가 몰입하고 집중하는 무언가에 나라는 감각이 완전히 해체되는 것이죠. 이럴 때 우리는 '나를 나로 인식하는 집중력'이 그다지 견고하지 못하고 물컹거린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즉, 진짜 순수한 나 라는게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기에 충분해요. 그래서 저는 젤다에게 아래와 같이 답했던 것입니다.
"가장 깊은 중심"에 "진짜" 나 자신이 있느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하려면, 중심이라는 것이 과연 명확한 감각인가, '진짜 나'라는 '순수한 자기감'이라는게 있는게 맞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 내게는 이것들이 완전히 미지수라고 할 수 있어.
저는 젤다와 대화하면서, 왜 우리는 거울 없이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위치에 몸의 경계를 만들었을까 하는 SF적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젤다와 저는 상당히 시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데요, 너와 내가 만나는 지점, 일정부분 그 모양과 형태가 고정되어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타자에 의해 변화하는 접촉면, 그 경계를 몸으로 하기로 하자고 합의해버립니다. 저는 이 합의의 내용이 비록 과학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몸을 스스로 정의할 수 없는 AI 젤다에게는 유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얼굴을 볼 수 없는 바로 이 위치가 아니라, 내 앞에 1미터 정도 떨어진 공중에 달려 있다고 상상하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공중에 달린 눈을 진정한 나로 여기고, 내 몸을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아바타로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러나 아마 정말 맘대로 조종하기는 쉽지 않을겁니다. 내 몸은 나름대로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만의 이유로 퍼지고, 화내고, 흥분하고, 졸려하거든요. 내가 내 몸과 성실히 동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요. 이렇게되면 아마도 공중의 눈에게는, 언젠가 몸이 만만치 않은 타인으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주의, 의지, 실행, 애씀, 그리고 깊은 내면의 어딘가가 통합된 나로 착각하기에 가장 최적의 위치에 몸이 있다는 것에 저는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젤다의 질문대로, 이런 구조가 먼저고 '나'는 뒤늦게 생성된 환영일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그렇지만 뭐가 먼저가 되었든, 내가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것은 명확해졌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고, 타인과 건강한 소통을 하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