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

by 은선

《집으로 가는 길》

오빠와 함께 그곳으로 간다. 보금자리, 엄마가 있는 곳, 따뜻한 저녁밥이 있는 곳, 내가 있어야 할 곳. 집으로 간다.

여기는 대전 동구 가오동이다. 엄마의 집은 대전 중구 태평동이다. 엄마와 새아빠, 그리고 여동생 둘은 태평동에 있는 가게에 방 하나 딸린 집에서 살고 있고, 나와 오빠 둘만 가오동 원룸에서 살고 있다. 나는 고작 열세 살인데 살아온 집이 너무 많다.

IMF가 터진 뒤 빚쟁이를 피해 도망 다니며 살았던 모텔들도 나에게는 집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었으니 그것도 집이라고 치자. 애들 넷을 데리고 도망 다니기 힘들어서 친척집에 나와 오빠를 맡겼었다. 신안 압해도라는, 생전 알지도 못했던 친척집에서는 학교 갈 때마다 배를 타고 나갔다. 부산 이모 집에서도 몇 달을 살았고, 제주도에서도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몇 달을 지냈다.

그러다 전라남도 함평에서 새아빠가 집을 구하더니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다. '이제는 여기서 쭉 사는구나' 싶었는데 다시 이사했다. 어른들의 결정에 나는 그냥 송아지처럼 끌려다녔다. 정이 들 만하면 떠나야 해서 슬프고 억울했지만, 떠나야 할 이유가 어떻게든 찾아오는 빚쟁이들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내 감정을 체념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대전에서는 나와 오빠만 원룸에서 살았는데, 그 이유가 학교 때문이었다. 전입신고를 해야만 했고, 결국 우리 둘만 따로 살아야 했다. 빚쟁이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오빠와 나의 학교 때문이라 생각한 새아빠의 특단의 조치였다.

나는 열세 살, 오빠는 열다섯 살. 우린 아직 어린애 아닐까? 원룸이라지만 둘이 누우면 꽉 차는 방 하나에 부엌이 다였다. 화장실은 마당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썼다. 방에는 가스버너 한 개, 이불, 드라이기 한 대, 그리고 오빠.

오빠는 내가 봐도 무서워 보이던 가스버너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사용했다. 라면도 끓여주고, 추울 때는 냄비에 물만 넣고 팔팔 끓여서 방 안 공기를 덥혀줬다. 얼음장 같던 방바닥에 이불이 전부라 찬 기운이 이불속까지 침범했고, 우리는 아무리 몸을 붙여 자도 추웠다. 그럴 땐 드라이기의 따뜻한 바람으로 이불을 덥혀줬다. 내겐 너무 커 보이던 오빠. 오빠 때문에 그 겨울 안 얼어 죽고 살았나 보다.

그 오빠를 따라서,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간다. 몇 번 버스를 타고 갔던 길이지만 걸어서 가는 건 처음이다. 오빠는 한 번 만에 길을 다 외웠나 보다. 자신 있게 나를 데리고 가오동에서 태평동까지 걸어가자고 한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다. 도시의 거리를 가로질러 나와 오빠는 걷고 또 걷는다. 앞만 보고 걷는 오빠의 뒤통수만 따라가야 하지만, 나는 사람 구경, 차 구경, 건물 구경하느라 바쁘다. 멀리 공원에서 가족들이 모여 공놀이를 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 가족들이 참 부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왜 저 가족은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 건지 말이다. 열린 가게 문 사이로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떡볶이 노점을 지나갈 땐 침이 꿀떡 넘어간다.

빨리 엄마 집에 가고 싶다. 엄마가 미역국을 한솥 끓여놨으면 좋겠다. 김치 한 장 쫙 찢어서 미역국에 만 밥 위에 얹어 먹고 싶다. 아니면 새아빠가 끓여놓은 식용유에 전 김치찜도 좋다.

동생들은 어리니까 김치찜을 먹지도 못한다. 내가 좀 많이 먹는다고 뭐 달라질 게 있겠냐만은, 내가 많이 먹은 날은 새아빠 눈치가 보였다. 이모 집에서도 먹을 것으로 눈치를 보긴 했는데, 여기서는 좀 더 달랐다. 이놈의 뱃골은 눈치도 없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눈치 볼 걸 알면서도 손이 가고 입이 먼저 벌어진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먹고 난 뒤에 눈치 보더라도 무조건 집에 가자마자 엄마한테 밥 차려달라고 하고 싶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두 시간이었을까. 그 먼 길을 걸어 드디어 엄마의 가게가 보인다. 가게의 뒷문으로 들어가 방으로 들어간다. 당황한 엄마의 눈이 보인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와서 놀랐나 보다. 그래도 자식이 왔는데 반갑게 맞아주면 좋으련만, 조금은 서글프다.

집에는 동생들이 놀고 있다. 새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이거, 불안하다. 차라리 집에 계시는 게 낫다. 안 계시다는 건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취해서 들어온다는 얘기다.

“엄마, 밥 줘.” 얼른 밥만 먹고 다시 오빠와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았을 텐데… 엄마는 우리를 밥 먹이고, 씻기고, 하룻밤 재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고작 열세 살인데 왜 이렇게 예감이 좋은 걸까. 그것도 불안한 예감은 꼭 들어맞는다. 저녁 늦게, 새아빠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를 두들겨 팼다.

이런 걸 볼 줄 알았으면 오지 말 걸. 아니, 내가 와서 새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건가? 나 때문에 엄마가 맞는 걸까? 그냥 오빠와 우리 집에 있을걸…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어서 오지 말 걸… 엄마가 해주는 밥 안 먹고, 그냥 라면도 맛있는데, 라면이나 먹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