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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Feb 06. 2024

라흐맛, 고맙습니다

아침(올리브오일에 마늘 볶다가 토마토 잘라 넣고 계란 2개 푼 무엇+커피, 바게트) 먹고, 빨래 널고, 매트리스 세워두고, 뭐 할까 하다가 페북에서 본 김해 우즈베키스탄 식당이 생각나서 찾아봤다. 지방신문 기사에 '경남의 이태원'(한국의 나폴리, 산토리니, 마추픽추 라면서 외국 유명 도시와 비교하더니, 이젠 국내 베끼기로 번졌나? 어디의 어디 류의 구태의연한 비교와 표현, 지루하다), 어쨌든 집에서 멀지 않으니 가보자, 파슈수 타고 쓩~


어라~ 한국서 제일 많은 인구수를 가졌다는 김해 김 씨의 시조가 묻힌 수로왕릉이 바로 근처다. 내 조상 무덤도 안 찾는 놈이 남의 조상 무덤을 찾을 건 뭔가 싶지만 이왕 왔으니 들렀다.


달랑 봉분(삼국유사의 한 줄 문구로 짐작한 듯) 하나에 이런저런 의례를 위한 건물이 여럿, 유물관도 형식적이고 볼 건 없다. 역사책에서 봤던 대성동 고분군이 지척이라 갔다. 고분 앞엔 아주 작은 사진과 전문지식을 뽐내는 설명이 있다. 왜 유물 설명은 전문지식 없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설명하지 않을까? 고분의 실제 크기 모형이나 사진을 비치하면 현장에서 무덤의 변화사를 알 수 있을 텐데, 유물관 안에 가두고 현장감을 없애는지 모르겠다.


고흐가 말년에 머물렀던 오베르쉬아즈 교회 앞에 고흐가 그린 교회 그림이 크게 비치되어 현재의 모습과 그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현장감이 좋았다. 과거의 영광을 뭔 뜻인지도 모를 말로 읊조리는데만 열과 성을 다하느라 현재의 돈을 쓰기 바쁘다.


왕릉이나 고분군이나 유적으론 볼거리가 없지만 평지에 완만하고 야트막한 구릉이라 무릎 안 좋은 당신과 손잡고 산책하며 얘기 나누면 좋겠다, 싶었다. 어딜 가나 맞잡았던 손, 몸의 기억이란!


가야 문명에 대한 궁금함이 생겨 국립김해박물관, 고분박물관 검색했더니, 월요일이라 쉰다. 일요일 문 열고, 공공기관이니 그렇겠지만 쉬는 날짜가 겹치지 않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김해를 근거지로 둔 유물과 관광자원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공공을 기반으로 한 곳은 365일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택배노동으로 10여 킬로 빠진 후로 지방이 없어서인지 배고플 때 배를 채우지 않으면 몸 상태가 급격히 떨어진다. 서둘러 동상시장 쪽으로 가는데, 오호~ 아시아 음식점이 한 집 건너 하나, 여행지에서도 영어 간판이 많은데, 여긴 오히려 현지 언어다. 관광객이 아니라 여기 사는 현지인이 대상인가 보다.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터키, 우즈베키스탄, 인도 등 대충 본 것만 해도 이 정도니, 더 있을 것이다.


시장 안 구석에 파슈수를 주차하고 우즈벡식당을 찾으려는데, 가게 앞 매대에 낯선 빵이 놓여있고 부엌에선 음식을 만들고 있다. 뭐지? 기웃대는데 간판이 우즈벡식당! 가게 안 서너 테이블에 우즈벡인들이 식사 중이고, TV에선 우즈벡 뮤직영상이 쉼 없이 나오는 중이다.


메뉴판엔 메뉴 사진과 우즈벡어로 추정되는 낯선 말,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라비어 숫자로 된 가격뿐. 그 흔한 영어가 아예 없는 메뉴판을 봐선 우즈벡인이 대상인데, 가겟세가 제법 될 텐데 우즈벡인이 그리 많단 말인가?


무슬림인듯한 주인장에게 담백해 보이는 빵 1개, 속에 소고기 들어간 사모사 같은 빵 1개, 서브웨이 샌드위치 같은 케밥에 그냥 티를 시켰다. 담백해 보이는 빵은 옆 테이블 두 군데서 먹는 걸 보니 어떤 음식에도 빠지지 않는 주식인 듯하다. 먹으니 정말 담백해서 질리지 않았고, 소고기 들어간 빵은 뜨겁고 고기가 많이 들었는데, 향이 강했다. 케밥은 서브웨이보다 10배 맛있고, 그냥 티(레몬티는 2천 원)는 천 원으로 괜찮았다. 잘 먹은 후 고맙습니다를 우즈벡 말로 뭐냐 물었는데 주인장이 못 알아듣자, 옆테이블의 젊은이들이 라흐맛(?)이란다. 라흐맛, 라흐맛, 몇 번을 읊조리자 다들 웃는다. 같이 웃는다. 나오면서 우즈벡 전통빵(2천 원?) 한 덩이 샀다.


신호등 없고 차 안 밀리는 코스라 오도방 타기 좋으니 파트너 꼬셔서 또 가야겠다. 다음에는 우즈벡 음식 공부하고 가야겠다. 스탄이 누구의 땅이라는데 우주벡인의 땅이 궁금해졌다. https://blog.naver.com/a6969235/222077829852

그러고 보니 우주벡과의 인연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아는 형님 따라서 양파 까대기를 한 적이 있다. 양파밭에 일렬로 늘어선 20kg 주황색 망을 트럭에 싣고, 적재 장소에 내리면 1망에 400원을 받는다. 농사 일당으론  제일 센 편인데 힘들어서 할 사람이 없단다. 975망*20kg*2회=39,000kg=39톤, 일당 390,000원, 다른 벌이가 없던지라 계속하고 싶었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팔 인대가 늘어나서 숟가락 들기도 힘들어 하루하고 관뒀다. 그때 만났던 이주노동자 중에 우즈벡인이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 짧은 목, 굵은 팔 등 모든 조건이 양파 까대기에 최적화였고, 너무 출중한 능력에 그저 감탄하고 부럽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여행업자 시절,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경험이라며 대단한 기대와 설렘이 한가득인 사람들에게 아무리 특별한 여행이어도 결국 먹고, 자는 일상인데 그 일상을 맞는 곳이 낯선 곳일 뿐이니, 낯섦을 받아들여라, 다름을 인정해라, 내가 사는 곳과 비교하고 우열을 매기는 순간 특별한 경험은 지옥이 될 수 있다며 흥을 깨곤 했다. 사실이니까. 낯선 먹거리가 있는 곳이 여행지, 김해 동상시장으로 아시아 음식여행을 종종 오겠다 싶다. 여행이 별 건가!


배송하다 보면 주소지가 불분명해서 상품을 어디 두면 되냐 묻기 위해 고객 통화할 때가 있다. 서툰 한국말이라 정확한 의사소통은 힘들지만 물건 두고 사진 찍어 보내면 이주민들은 잘 찾아간다. 반면 자기 집 문 옆에서 조금 떨어져 물건 뒀다고 오배송으로 항의하는 한국인들,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그들이 안 산다고, 내 눈에 안 보이니 없는 존재인양 취급한다. 하지만 많은 이민자들이 이미 우리 곁에 산다. 이미 세상은 다인종, 다민족으로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동이 없으면 세상이 정상적으로 작동될까? 돈으로, 피부 색깔로 사람 차별하는 괴물로 살지 말자.


무작정 가본 김해 여행에서 든 생각

1. 김해 김 씨들은 다른 건 몰라도 단일민족 운운하면서 이민자에게 배타성을 가져선 안된다. 말 안 통하고 음식과 문화가 다른 동네에 와서 고생했을 이민자 1세대가 자신들의 인도인 할머니이고, 그 덕분에 자신들이 존재하므로.


2. 김해시는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환대하는 정책으로 이민자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가야 자체가 연합국가였고, 김해는 이민족 연합(수로왕+허황후)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번성했고. 몇 천년 전 죽은 왕에게 제사 지내며, 김해 김 씨 몇 대손 운운하는 순혈주의자들의 말에 휘둘려선 안된다. 애초부터 단일 민족은 있을 수 없고, 설혹 있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역사가 증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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