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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먹은 타이둥 포크스테이크

대만 동부, 타이둥

by 딜리버 리

동료들과 휴무교환하는 손품을 팔아서 대체휴무 5일에 휴무 4일을 붙여서 대만 남부 9일(처음 3박 4일은 직장 동료와 나머지 기간은 혼자) 여행을 만들었다. 휴무교환으로 대만 여행이 동료들 사이에 알려진 어느 날,

-이번에 또 길게 간다매요?

-어... 대만

-2년 전인가... 갔다아입니꺼?

-아... 그때는 타이베이, 이번엔 대만 남부

-대만이 마이 좋았어예?

-좋기도 한데... 그것보다 궁금함이...

-머가요?

-대만은 당연히 중국 문화권인 줄 알았는데 타이베이 원주민박물관 갔다가 어, 아니구나. 대만 원주민에겐 중국도 점령자였구나.

-와요?

-원주민 유물이 태평양 섬과 문양이 비슷하고 색상이 화려하고 다채롭던데... 중국과 달라

-9일이나 볼 게 있어요?

-대만 남부는 처음이기도 하고. 그곳에 평생을 사는 사람도 다 못 보는데 9일로 다 볼 수 있는기 이상한 거 아이가

-이야~ 여행철학자 납셨다

-지랄한다. 유명장소 돌아다니기보다 동네 어슬렁대며 머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타이둥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숙소에 도착,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준대서 체크인 시간까지 타이둥 삼림공원과 동해안, 철도예술촌으로 해서 숙소로 돌아오면서 타이둥역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는 계획이었다. 주로 수면유도용으로 쓰이고, 대부분 완독 하지 못하지만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한두 권 들고 온다. 이번엔 대만 작가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를 가져왔다. 밖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려는데, 소설에 나오는 대만의 초창기 자전거 모델처럼 아예 기어가 없다, 어허~ 우연일까? 그나저나 기어 없는 자전거, 이걸 어찌 타나?


20여분을 탔나? 구글맵이 안내한 타이둥 삼림공원 입구에 도착했는데, 작은 다리 건너편인데 막혀있다. 타이둥 시내가 잠시도 페달을 뗄 수 없는 완전 평지로 기어가 필요 없지만 정문은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한다. 햇볕은 쨍쨍하고 이미 온몸에 땀이 배어 나오는데, 으음... 잠깐의 고민 끝에 자전거를 들고 차량 진입을 막고 있는 쇠사슬을 넘었다. 이야~ 공원 안은 포장도로가 깔려있어 자전거 타기 좋고, 무릎 안 좋은 이들이 걷기에도 괜찮겠다. 아주 넓은 공원으로 하늘 보고, 구름 보고, 새소리 듣고, 그늘에 앉아 물속이 훤히 비치는 호수를 멍하니 보다 보면 바람이 부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불어온 바람처럼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한국의 동해와 유사한 바다(여기도 대만의 동해구나)가 펼쳐진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를 타다가 시내로 들어갔다. 기대했던 철도예술촌은 거의 폐업 상태로 문 연 곳이 없다. 안 그래도 4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서 몸도 지쳤고 배마저 고프다. 구글맵으로 주변 검색하니 스테이크 하우스가 나온다. 으음... 너무 뜬금없다 싶은데, 리뷰는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싸고 맛있는 먹거리천국인 대만에서 스테이크 하우스를 하려면 제법 맛있어야 하겠지? 그래서 들어갔다. 맛은 나쁘지 않은데 두 번 먹을 가격은 아니다. 손님이 나를 포함해 두 테이블이 있는데도 직원들은 쓸고 닦으며 청소를 하느라 바쁘다. 고가전략의 레스토랑인 듯한데 글쎄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저가다.


숙소 돌아와서 10인실에 짐을 풀고 씻고 전형적인 백패커 숙소를 둘러보며 밤에 뭐 하나 싶은데, 야간 투어(21:00~23:00) 안내문이 눈에 띄어 스탭에게,

-이거 오늘도 해?

-당연. 1명은 500원이야

-참가할게


차량으로 타이둥 야간투어 2시간에 2만 5천 원이 안되다니, 오호! 스탭이 19시~21시로 바꿔도 되냐기에 (속으로 나야 더 좋지) 오브코스. 밤 일정이 생겼으니 타이완 맥주 한 잔 하고 잠깐 졸았다. 약속 시간에 로비로 내려갔더니 오늘 가이드를 해줄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다.


-하이~ 나는 리, Lee. 근데 (참가자가) 나 혼자야?

-나는 카이, Kai. 저스트 원.

-(살짝 들떠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데) 어디 가는데?

-마운틴, 레스토랑. 참 현금 있어?

-왜?

-레스토랑이 현금만 돼서

-어, 있어


인공조명이 없는 산속으로 가서 별 보고, 레스토랑에서 음료 한 잔 하고 돌아오는 코스구나. 차를 타고 가며 번역기로,

-낮에 해변에 갔는데 바닷물 색깔이 근해는 짙은 흙탕물이고 조금 멀리는 시퍼렇고, 다르던데 왜 그래?

-으음… 하나는 바닷물의 깊이 차이, 두 번째는 쿠로시오 해류 영향으로 알아

-쿠로시오 해류 들어봤어, 아~ 해류 방향 때문에… 엄청 깊은가?

-엄청 깊어. 수백미터가 넘어. 물살도 빠르고

-타이둥이 오래된 도시야?

-그럼, 오래됐지

-타이난, 타이중은 유적도 있고 오래된 도시인 거 알겠는데 타이둥은 글쎄…

-아~ 그 도시와 달라

-어떻게?

-타이난, 타이중은 명, 청 왕조 때 중국에서 와서 만든 거고, 여긴 원래부터 있었어

-선주민?

-그래, 대만 전부가 그들 것이지만 뺏겼고, 그래도 이곳은 오랫동안 원주민의 땅이었어

-(원주민 계열인가 싶어) 이곳 출신이야?

-아니, 타이베이. 할아버지가 국민당 군인이었어.


지킬 게 있는 자가 아무리 용을 써서 지키려고 해도 잃을 게 없는 자의 뺏으려는 욕심을 이길 수는 없나 보다. 지금까지는 불편한 교통편으로 대만 동부의 자연환경이 그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데, 타이둥 시내로 들어올때도 그렇고 시내 곳곳에 공사 중이고, 흉물처럼 방치된 건물도 제법 보인다. 여기라고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까? 싶다.


가로등 없는 산길을 오르며 인공조명 없는 곳에서 별 보기 좋겠다 싶은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공조명으로 환한 레스토랑으로 안내한다. 설마 이건가?

-카이, 별 보기 이런 거 없어?

-별 보기, 왜?

-야간 스페셜 투어라기에 그런 게 있나 했지

-아닌데, 레스토랑이 전분데

언제부턴가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이 있으면서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대만도 같이 와서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건 마찬가지다. 그 모습이 쓸쓸하고 외로웠다. 정확하게는 슬퍼 보였다. 나에게 이런 감정이 생기면 그도 같은 감정이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같이 있을 땐 사진 찍는 거 말곤 가급적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시내 야경을 내려볼 수 있는 레스토랑에 달랑 나 혼자뿐! 야경 구경은 길게 잡아도 10여분이면 충분한데, 2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하려고, 야간 투어를 신청한 게 아니잖아? 30분 이나 지났나? 카이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했고, 숙소 오기 전에 전가네에 들러 맥주 2캔을 샀다. 대만 여행의 마지막날을 그냥 잠들 순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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