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똘레랑스 tolérance
헤퓌블리끄 République
#나는_빠리의_택시운전사(홍세화, 창비)
2000년대 초, 파리에 2년 정도 머무를 때 ‘까또랑쥬’라는 월 정액권으로 지하철, 버스를 제한 없이 탈 수 있고, 당시 100유로 넘게 주고 산 자전거로 나다니기 충분해서 택시를 탄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무엇보다 택시비가 비쌌다.
머무는 기간과 비례해서 모국어에 대한 결핍은 커졌고, 프랑스어는 늘지 않았다. 자연스레 파리 시내에 있는 한국문화원을 들락거렸다. 당시 한반도 남쪽은 황우석 광풍이 강타했을 시기인데, 파리의 한국문화원 서가에도 만화책, 위인전, 자기 계발, 미래 먹거리 등등 온갖 분야에 황우석 관련 책이 빼곡했다. 하~ 이 놈의 유행 몰빵은 정말!
서가를 뒤지다가 서울대, 남민전, 빠리의 택시운전사, 특이한 이력이라 골랐다. 오래전이라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똘레랑스(관용)와 헤퓌블리끄(공화국), 두 단어는 남아있다. 단어는 명확성을 가진다고 교육받아서인지 꼬리에 꼬리를 물듯 해석의 여지가 확장되고 질문이 생기는 똘레랑스, 아직도 어려운 단어다.
정권 교체시기 또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면 진보, 좌파의 명망가들이 온갖 이유와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의 조직과 동료를 배신하고, 집요하게 비난하고 공격할 때도 홍세화는 예외였다. 그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글처럼 인품이 훌륭해서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원하는 걸 맞춰주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그와 싸움붙는 걸 회피한 것이었다.
자신이 목청높인 이런저런 이유와 대의명분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형편없는 논리인지 자신 스스로 알기에 그 불편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그들은 홍세화를 피했다. 공화국, 인민의 적들을 불편하게 했던 그가 영원히 떠났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