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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Aug 05. 2024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설거지와 청소, 세탁을 귀찮아하지 않는(어떨 땐 진심인)데 추측컨대 하기 전후의 모습이 달라서 아닐까 싶다.


싱크대에 뒤죽박죽 쌓였던 그릇이 가지런히 찬장에 놓이고,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집안에서 자잘하게 밟히는 먼지와 지푸라기,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쉰내와 홀아비 냄새를 폴폴 풍기는 허물 같은 옷들이 빳빳해지는 결과물을 좋아해서다.


설거지는 쌓아두지 않고 한두 번 먹고 나면 씻는 편이고, 세탁은 휴무일마다 세탁기를 돌리니 2~3일 간격이다. 여름 작업복이 세 벌이라 요즘같이 불볕더위가 계속될 땐 무조건 해야 한다. 청소는 세탁기가 도는 동안 진공청소기로 1차, 2차로 물걸레질을 한다.

S가 사줬던 무선 진공청소기가 작년 언젠가 고장 나서 유선을 샀다. 다이슨이나 삼성, 엘지 같은 비싼 무선을 안 써봐서 모르지만 무선은 편리해도 흡입력이 부족했다. 볼일 보고 물로 씻은 지 수십 년 되니 화장지로 닦으면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 무선이 딱 그랬다.


전기선을 길게 뽑고 콘센트에 꽂고 전원 버튼 누르면 전투를 앞둔 군인처럼 비장미마저 든다. 실제 흡입력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뭐든 빨아들일 태세로 시끄럽게 윙~ 모터소리 내는 유선은 믿음이 간다. 유선은 불편하고 귀찮잖아? 불편함과 귀찮음은 신성한 청소의식의 필수요소고, 청소에 진심인 사람에게 고려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유선은 무선에 비해 가격도 싸다.


그 신성한 청소를 날씨가 덥다는 핑계로 1주일 이상 미뤘다. 세탁기는 이미 2번이나 돌렸음에도! 발바닥에 이런저런 자잘한 밟힘이 느껴지고, 머리카락이 보임에도 말이다.


더 이상 미루기 싫어(계속 찜찜했거든!) 세탁기 돌리는 동안 청소기를 콘센트에 꽂고 청소 시작, 화아~ 진짜 덥다. 부엌과 작은 방(합쳐서 2~3평 될라나?) 청소기 돌렸는데 땀이 줄줄, 온몸이 땀범벅이고, 방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거실과 침실이 남았는데 안 되겠다 싶어 수건으로 몸을 닦고 에어컨 가동.


컴퓨터, 핸드폰 보다 세탁기, 청소기가 삶의 질에 끼친 영향이 크다.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 등 문명의 산물로 삶은 편해진 게 분명하다. 세상 이치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줘야 하듯 삶은 편해졌지만 기계 사용이 늘수록 전기 사용은 늘고 우리네 삶은 불구덩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서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사람 마음도 그런 것 같다. 무선이라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다. 서로에 대한 약속, 믿음은 보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보통의 조건(돈, 아파트, 자동차 등)을 찾는지 모르겠다. 배터리 다된 무선이 무용지물이듯 어느 순간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끊어도 어쩔 수 없는 게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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