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여행을 오기 전에 체코의 소도시를 찾았는데 정보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체코 가이드북은 프라하 정보만 넘쳐나고, 그 외 카를로비바리, 플젠, 체스키 크룸로프 등에 대한 정보가 간략하게 있었다. 이럴 거면 프라하 가이드북으로 이름을 바꿔야지! 개별 여행자들이 올린 정보와 동선도 패키지와 엇비슷하게 프라하, 카를로비바리, 플젠, 체스키 크룸로프 등이 전부다. 체코에 사는 한국인들이 예전에 올린 것과 유니크한 취향의 소수자들이 올린 소도시 정보가 가뭄에 콩 나듯 있었다.
체코에서 제일 좁은 골목길이 있다는 중세풍의 도시 카단과 맥주홉의 성지라는 자테츠를 소개한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갔다. 자테츠는 홉박물관 마저 문을 닫아서 자테츠 홉으로 만들었다는 생맥주 2잔 마시고 돌아왔다. 카단은 독일기사단(이라니 특별한 집단 같지만 실은 국가가 방치한 또는 허가받은 무장폭력배, 즉 정치깡패 아니었을까?)이 머물면서 13세기 즈음에 도시 건설이 본격화됐단다. 나중에 가장 좁은 골목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밤 10시 이후에 성문이 닫히면 성으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단다. 사형집행인의 슬픈 사랑 얘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상사바위, 상사폭포처럼.
구글 AI가 길 자체가 매우 좁아 표시를 발견 못하면 놓치기 쉽다더니, 얼마나 좁기에? 부슬부슬 비는 내리는데 오히려 기대감은 커진다. 분명 이 근처가 맞는데… 찾지 못하고 한참을 헤매다가, 공사 자재를 나르고 있는 현지민에게 "Kde je Neju2 si ulice?"(좁은 길이 어디에 있나요?") 물었더니, 뭔 말인지 못 알아듣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몸짓으로 아주 좁은 틈을 비집고 게걸음으로 지나가는 동작을 하며 "아주 좁은 길. 좁아" 했더니, 오야지 같은 사람이 젊은 친구에게 뭐라 뭐라 말한다. 말이 안 통하니 직접 데려다주려는 듯 그 친구가 성큼성큼 앞서서 걷기에 따라갔다. 어느 골목 앞에서 체코말로 뭐라면서 씩 웃는다. 아휴~ 너무 고마운데, 그저 "데꾸이, 데꾸이"만 연발했다.
연합뉴스가 허가받은 찌라시인건 알았지만 정보가 워낙 없어서 방심했다. 기자가 유럽의 좁은 골목길을 구경 못했거나, 보도자료 뿌린걸 복붙하고 현장을 안 갔거나, 그리 좁지 않은 걸 알았지만 접대받았으니 거짓말을 했거나 중에 하나 아닐까 싶다. 그리고 너무 좁아서 못 찾는 게 아니라 벽에 붙은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는 게 어렵다. 오가는 데 불편 없는 좁지 않은 최고 좁은 길에 실망하는 순간, 갑자기 배가 고프다. 감정이 식으면 밥맛이 없다는데, 그건 배고픔을 이길 정도의 감정(기쁨이든 슬픔이든)이어서 아닐까? 그런 감정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밥만 잘 먹는데, 이 정도 실망엔 배고픈 게 당연하다.
여기도 다른 곳처럼 문 연 식당이 눈에 안 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광장에서 베트남식당(우와~ 여기서만 2군데!), 케밥(어디든!) 중에 어딜 가나 하는데, 바로 뒤에서 웅성웅성 대며 주민들이 나오는 식당 발견, 고민은 필요 없다. 바로 입장,
-(아주 반갑게) 도브리덴?
-(너네가 여길 왜 표정으로) 도브리덴~
-(손가락 2개 들며) 2명
-(아무 데나 앉으라는 손짓 하며 체코어로) 뭐라 뭐라
체코어만 되고 메뉴판이 없어서 염치 불고하고 옆 테이블 손님들 음식을 가리키며, 손가락 1개씩 들었더니, 그 손님들이 엄지 척하며 잘 시켰다, 맛있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며 환하게 웃는다. 버섯을 잘게 썬 굴라쉬와 잘게 썬 양배추절임과 감자전이 덮밥 형태로 나온다. 이전에 자테츠 식당에서 먹었던 굴라쉬가 정통을 내세우며 비싼 레스토랑 비주얼이라면 여긴 동네 사람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저렴한 분식집 버전이랄까?
수저를 안 줘서 여기 수저 없어요 동작을 취하는데 옆 테이블 손님이 네가 앞쪽에서 가져오라며 바디랭귀지를 해준다. 그러고 보니 손님들이 자기 음식을 입구 쪽 주방에서 직접 들고 온다. 말이 안 통하는 관광객이라 음식은 가져다준 듯하다. 그러고 보니 메뉴도 2~3 종류인걸 보니 비수기에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준공영) 급식소 같은 걸까? 음식 종류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가격 대비 맛의 호불호는 있는데 감자전덮밥은 괜찮다. 누님도 맛있단다. 굴라쉬는 약간 짭짤한데 맥주와 궁합이 좋다. 음식과 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닌가?
인간 감각에서 정보수집의 상당 부분을 시각이 차지하고, 가장 빠른 루트라고 한다. 대신 시각으로 입수된 정보의 보존기한은 다른 감각에 비해 짧단다. 그러지 않으면 그 많은 시각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느라 뇌는 과부하 걸릴 테니까. 멋진 풍광 또는 아름다운 건물과 오래된 유적을 보려고 발이 부르틀 정도로 돌아다닌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으로 보면서 연신 사진도 찍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고 시간이 지나면 시각 정보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때 거기 갔었지 정도의 기억만 남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식당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먹은 이름도 모르는 음식의 맛, 그곳의 냄새는 오래 남는다. 카단은 좁은 길이 아니라 이렇게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