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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에 꼽을 존맛, 치킨!

by 딜리버 리

#해돋이로, 이름만 들어도 어우~하고 몸이 움찔거리는 택배 난이도 높은 도로명이다. 동료들끼리는 전국에서 최상급 난이도 지역일 거라 얘기한다. 이 지역 배송은 해돋이로(왕복 2차로)에 차를 세우고 아래, 위 좁은 골목길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갈 때 내리막이면 돌아올 때 오르막을 힘겹게 오를 수밖에 없다. 물건 들고 오르는 것보다 내리막이 조금 나은데 한 걸음이라도 덜 걷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르막을 낑낑대며 오르기도 한다. 어느 길을 먼저 택해도 한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한파주의보에도 몸은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하동상회, 해돋이로 버스정류장 옆 구멍가게다. 가게 뒤편으로 영도와 남포동 쪽 항구가 펼쳐진 뷰포인트다. 예전엔 동네 사람들이 외상장부를 달고 살며 드나들었을 가게였을 테지만 언제부터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더 이상 살러 오는 사람이 없는 동네가 된 뒤 하동상회는 동네 노인들의 모이는 사랑방이 되었다. 한 번은 목이 너무 말라 시원한 탄산음료를 사려고 들어섰는데, 살 물건이 없어서(냉장고 전원이 꺼져 있었던가?) 물을 샀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가게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아래위 골목길로 배송하는데, 오늘은 하동상회가 배송지다. 드문 일이다.


-(미닫이문을 열며) 안녕하십니꺼? 택뱁니다

-(가게 안은 남녀 노인들로 북적,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머꼬?

-내용물은 모르지예. 김0희씨 계십니꺼?

-낸데. 머지?

-(통닭 냄새가 화악) 우와~ 맛난 거 드시네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들어오이라 (서로 당겨 앉으며)어여 안자

-오데요

-그래, 기사양반 바쁘다. 어여 입에 물리라. (곁에 있던 노인이 닭가슴살을 입에 물려준다)

-오~ 맛있네예. 오늘 누구 잔칩니꺼?

-영감할매들 회식 아이가(다들 하하 호호)

-직이네예

-술도 한잔해

-아이고~ 절대 안되지예

-한 잔은 괜찮다 아이가

-아입니더

-닭이라도 더 무라. 일이 힘드니 배 고플 거 아이가

-햐아~ 배송 안 하고 어르신들이랑 있고 싶네요. 잘 먹고갑니더. 맛나게 드이소

-있어봐라. (닭날개를 손에 쥐어준다) 이거라도 무라


해돋이로 아랫 골목길로 들어서는 한 손엔 닭날개가, 다른 손엔 배송물품이 들려있다. 다행스럽게 무거운 물건이 없다. 이 길을 들어서며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저녁 무렵에 아파트 엘베에 배인 치킨 냄새가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 지 맡아본 사람은 안다. 지금껏 먹은 통닭 중에 다섯 손가락에 꼽을 존맛! 어느 브랜드 치킨이 더 맛있네 마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먹는 지가 맛의 만족도를 좌우하지 않을까? 물론 혼자 혼닭해도 치킨이 맛있긴 하지만. 입에서 씨바씨바가 절로 나왔던 동네,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이 오지 다른 일로는 올 일 없을 동네, 그 동네에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통닭을 서슴없이 먹이는 노인들이 살고 있다. 닭기름에 번들거릴 입가엔 자연스레 배시시 웃음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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