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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로 다녀온 베트남여행

베트남 쌀국수

by 딜리버 리

오토바이 탄 지 얼마 안 돼서 급한 마음에 버스 전용차선으로 들어서다 버스와 추돌해서 기절한 적이 있다. 그때 충격으로 헬멧 안면보호창(페이스 실드) 한쪽 잠금장치가 부서져서 덜렁거렸다. 케이블 타이로 묶어서 그럭저럭 사용했는데, 어느 날인가 오토바이를 타는데 덜렁거림이 심해서 뜯어버렸다.


마침 겨울이 왔고 바람을 맞서며 달려야 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는 예민하면 안 되는데, 풍찬노숙에 익숙해야 하는데, 눈이 시려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연신 눈물을 닦아가며 탔다. 헬멧을 사면 해결될 일인데 차일피일 미루며 날씨 풀리면 타야지 하는 마음만 먹었다. 언제나 그렇듯 현재의 선택과 결정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타당한 이유를 찾고 핑계를 만든다. 그러다보니 오토바이 타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이틀 연속 휴무일 1일 차에 방콕 여행을 너무 즐겼다. 이렇게나 방콕을 좋아했나? 의자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배송할 때 보다 허리가 뻐근하다. 날씨도 풀려서 그렇게 춥지도 않은데 이런 식이면 4월이 와도 핑계 있는 무덤 속에 머물겠다 싶어 핑계를 없애기로 했다. 이럴땐 현질!


머리가 커서 무조건 XL를 사면 되지만 그래도 현질은 인터넷이 아니라 오프라인이다 싶어,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바이크런 매장까지 눈물 줄줄 흘리면 달려갔다.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헬멧은 거의 유일한 안전장치라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다짐하며 카본 소재의 멋진 풀페이스를 구경하는데 비싸다. 많이 비싸다. 굳이 이렇게 비싼걸? 살 마음이 달아난다. 결국 반값 이하인 오픈페이스형 헬멧을 구입했다. 돌아오는 길은 낙동강을 옆에 둔 강변도로를 달리는데 눈물이 안 난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걸, 진작 살걸!


작년 체코-독일 여행 이후 오토바이가 주차되었던 시간이 길어서 먼지가 뽀얗게 쌓였기에 세차장 가려다가 배 고파서 #신평시장으로. 신평시장에는 빌라, 원룸과는 다른 계단이 좁고 가파른 3~4층 집들이 빼곡하게 있다. 흔히 하꼬방이라 부르는 이곳에 부산으로 밥벌이 왔던 한국인들은 떠났고, 노인과 이주민들이 많이 산다. 간혹 주소지가 안 맞아 위치 확인차 전화하면 서툰 한국어를 듣는다. 이주민이 많이 사는 곳임에도 의외로 동남아 식당이 눈에 안 띈다 싶었는데 얼마 전 배송지 바로 옆에 한글로, 베트남식당!


오토바이 세우며 장사하나 싶어 안을 흘깃대는데 중년의 아주머니가 가게문을 열기에,

-장사해요?

-(입을 오물거리며) 냥… 넝…

-(손짓으로 국수 먹는 시늉을 하며) 뽀 보, 뽀 보

-(살짝 웃으며, 손짓으로 들어오란다)

메뉴판을 찾는데 네다섯 종류의 쌀국수 사진과 가격이 벽에 붙어있다.

-(뽀 보를 가리키며) 곱빼기요. 더블 더블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어… 어…

-(손짓, 발짓을 더하며) 아주 많이

-(어딘가로 전화 걸더니 바꿔준다)

-(전화기 너머엔 한국말이 유창한 이주민이 있다) 뽀보 곱빼기 시킬려고요

-곱빼기는 만원이에요

-네

-면 삶고 그러면 10분 정도 기다려야 해요.

-네


레몬(혹은 라임) 세 조각(안주는 집들이 대부분인데)과 쥐똥고추인 베트남 땡초를 먼저 주고, 좀 있다 쌀국수와 고수가 나온다. 요즘 쌀국숫집에서 흔히 먹는 야들야들 향 없는 하우스 재배가 아니라 적당히 억세고 향을 듬뿍 풍기는 노지 고수다. 한국인 입맛에 맞춰서 향을 없앤 베트남표 쌀국수만 먹다가 이게 얼마만이냐! 신나게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뭔 풀을 듬뿍 가져와서 먹을래 묻는 것 같기에,

-고맙습니다

-(입안이 화~ 한 시늉을 하기에)

-괜찮슴다. 좋아합니다

-(베트남어 번역기로 고맙습니다를 찾아서) 꼼온 컴온

-(알아들었는지, 웃음을 짓는다)

워낙 면을 좋아하는 면식범이라 더 먹고 싶어서 손짓, 발짓으로 면 추가되냐 물었더니, 다시 전화통화.

-엄마가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한국말 몰라요

-아~ 네. 지금 가게 있는 분이 엄마시구나. 괜찮습니다. 면 추가 될까요?

-(다시 엄마랑 통화 후에) 면 추가는 2천 원요

-네

-5분 정도 기다려야 돼요

-네


향신료 향 듬뿍 나는 쌀국수를 땀 뻘뻘 흘려가며 맛나게 먹었다. 20년 전 하노이 여행 갔을 때 마치 물결이 흘러가듯 자연스레 오가는 오토바이 행렬과 오토바이 위에서 먹고 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집에서 멀지 않으니 쌀국수 생각나면 오토바이 타고 베트남을 다녀와야겠다. 여행에서 오래 남는 건 눈으로 본 것 보다 입으로 느낀 맛과 코로 맡은 향이던데, 여행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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