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영화처럼 깔끔할 수 없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카체이싱으로 불리는 자동차 추격씬은 오고 가는 자동차 사이로 요리조리 끼어드는 아슬아슬함(다른 차량 또는 기차와 부딪칠뻔한 직전까지), 잡힐 듯 말듯한 거리감, 무엇보다 압도적인 스피드가 주는 긴장감이 묘미다. 하지만 아직 개통 전인 도로이거나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쫓고 쫓기는 차량은 딱 두대뿐, 5030 속도로 달리는 게 뻔히 보이는 차량 흐름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느긋하게 잡은 핸들과 다르게 대사만 긴박하고, 전복되었을 때 폐차 직전의 차량인 게 너무 티 나는 하체 등등으로 한국영화의 카액션이 주는 긴장감과 재미가 덜한 편이다. 단, 자동차 추돌 장면에서 차 안에 탄 사람들이 좌우로 흔들리며 충격받는 연기와 자동차에 부딪히는 스턴트맨 연기는 할리우드에 버금간다. 아직도 한국영화는 시간과 돈을 들이기보다 몸으로 때우는 걸 선호하는 듯하다. 말할 것도 없이 인건비가 싸니까!
다른 캠프로 지원 가서 적재를 끝내고 배송하러 가는 길이었다. 2차선 도로는 아니지만 차량 왕래가 가능한, 신호등 없는 공장지대 사거리를 지나던 중(일시 정지를 안 했다), 조수석 창 너머로 빠른 속도로 트럭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어~ 저대로면 부딪치겠다 싶어 엑셀 밟아 빠져나가려는데 그대로 추돌, 내 차량은 뒤쪽 짐칸과 후미등 쪽이 파손되고 상대차량은 전면부가 박살 났다. 차에서 내려 상대 차량 운전자가 괜찮은 지 살핀 후, 회사에 보고하고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했다.
지금도 신기한 건 그때 그 추돌직전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대 차량이 슬로모션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는데, 추돌하며 쿵하는 소리와 함께 휘리릭 빠르게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같은 시간의 흐름이니 그럴 리 없을 텐데 영화를 많이 봐서 그렇게 느낀 걸까? 어쨌든 영화 속 주인공은 이 정도 사고는 아무렇지 않게 툴툴 털고 일어나서, 차량도 그대로 둔 채로 가던 길을 간다. 영화는 실제를 흉내 내는 가짜라서 가능하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실제를 사는 영화 관객은 보험회사 직원이 올 때까지 상대차량 차주와 어색한 시간을 가져야 하고, 회사에 들어가선 사고경위서를 작성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과 어깨가 뻐근하니 병원 가서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한다. 영화 주인공이 멋져 보이는 건 당연하게 처리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