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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Dec 21. 2023

여행지 버스에서 뻗어나간 생각

 2019년 국립박물관만 후다닥 보고온 타이베이(단 하루!)에, 전직장 동료(2006~2008년 )였던 두 명과 7일간 머물다 왔다.


택시, 지하철, 버스, 뚜벅이로 돌아다녔다. 숙소를 처음 찾아올 때 버스를 잘못 타서, 한 번은 라이브뮤직클럽 끝난 새벽에, 그리고 3명이 같이 이동할 때 두세번 택시를 탔다. 택시비가 엄청 비싸진 않은데 대중교통이 워낙 저렴해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졌다. 대만서 만난 택시기사, 우버 기사들은 대만말만 할 줄 알고, 영어는 일절 못했다. 파파고 통역기능(한국어-중국어)으로 기본적인 소통은 가능했다.


여행 블로그나 책자에 한국인들이 반드시 간다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배경이라는 단수이는 영화를 안 봐서, 소원을 적은 등을 날린다는 스펀은 그런다고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 걸 알아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됐다는 지우펀은 사람에 치여서 행방불명될까 봐, 안 갔다. 평소 남의 의견에 조건없이 끄떡대는 사람들이 아닌데, 삐딱선 정신으로 살아서 그런가, 낼모레 50대가 되는 중늙은이가 되어서인지, 이런건 의기투합이 잘된다. 남들이 다 한다고 나도 할 필요는 없다.


지하철은 한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 같고, 버스는 앞뒤 어디로 타도 상관없는데(그러게 어차피 카드 찍는데 한국은 왜 앞으로만 타라고 성화일까?), 놀라운 건 그 버스가 새 차든 낡은 차든 저상버스다. 한 번도 계단을 오르는 버스를 탄 적이 없다. 마치 법으로 강제된 것처럼.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교토 갔을 때도, 호주도, 파리도 저상버스가 대부분이었다.


근데 세계 10위 경제력이라는 한국은 가뭄에 콩 나듯 저상버스를 볼 수 있다. 뭐 말하나마나 자동차기업이 우선이니, 그렇다. 세상이 변하든 말든 만들던대로 만들어도 여전히 팔리는 게 기업으로선 최고 아니겠는가? 민생 우선이니 서민을 위해 일한다고 입으로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이 버스를 탈때는 어떤 이벤트가 필요한 특정일 하루 뿐이고, 국민 세금으로 제공되는 대형 승용차를 타는 그들은 자동차기업의 눈 밖에 날 일은 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 선진국을 따지는, 돈이 최우선인 국가에 산다. 곧 60대가 되는 50대 택배노동자의 몸은 저상버스가 선진국 진입의 관문이고, 경로우대의 핵심이다. 제도와 시설의 변화 없이 입과 눈으로만 떠드는 경로우대는 거짓환상일 뿐이고, 몇 푼 쥐어주는 교통보조금은 노인의 입을 닫게 하는 잠금장치로 작용된다. 힘겹게 버스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면서도 버스의 문턱을 낮출 정치인을 뽑을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치를 걱정하는 늙은이들이 넘쳐난다. 곧 유령이 되어 돌아다닐 것이다. 일상이 달라지지 않는 한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저상버스가 다르냐고? 타보면 안다. 얼마나 편한지! 계단은 명백한 차별이다.

#대만 #타이베이 #저상버스 #이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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