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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버스를 타야한다

타이베이 여행

by 딜리버 리

2019년 국립박물관만 후다닥 보고 온 타이페이(단 하루!)에, 전 직장 동료 두 명과 7일간 머물며 택시, 지하철, 버스, 뚜벅이로 돌아다녔다.


숙소를 처음 찾아올 때 버스를 잘못 타서 어쩔 수 없이, 라이브뮤직클럽 끝난 새벽엔 대중교통이 끊겨서 할 수 없이, 3명이 같이 이동할 때 버스비랑 별 반 차이가 없어서 택시를 두세 번 탔다. 택시비가 엄청 비싸진 않은데 대중교통이 저렴해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졌다. 내가 만난 택시기사, 우버 기사들은 대만말만 하고 영어는 일절 못했지만 파파고 통역기능으로 기본적인 소통은 가능했다.


여행 블로그나 책자에 한국인들이 반드시 간다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배경이라는 단수이는 영화를 안 봐서, 소원을 적은 등을 날린다는 스펀은 그런다고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 걸 알아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됐다는 지우펀은 사람에 치여서 행방불명될까 봐, 안 가기로 했다. 대신 나는 원주민박물관, 누구는 쇼핑, 또 한 명은 숙소에서 업무처리하고 저녁에 숙소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만나서 해외 회식하기로.


나는 벌써 50이 넘었고 그들은 어느덧 50에 진입하는 나이가 되었다. 사회적 기준이나 시선을 핑계로 남들 다 한다고 나도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다 각자 방식을 타인에게 고집 피우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싶다. 나와 동행자의 취향이 중요한 이유다.


대중교통으로 여행지를 돌아다니면 자연스레 그 곳의 사회시스템을 알게되는 경우가 있다. 지하철은 한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버스는 앞뒤 어디로 타도 상관없는데(그러고보면 어차피 카드 찍는데 한국은 왜 앞으로만 타라고 성화일까?), 놀라운 건 새 차든 낡은 차든 저상버스다. 한 번도 계단을 오르는 버스를 탄 적이 없다. 마치 법으로 강제된 것처럼.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교토 갔을 때도, 호주도, 파리도 저상버스가 대부분이었다.


근데 세계 10위 경제력이라는 한국은 가뭄에 콩 나듯 저상버스를 볼 수 있다. 뭐 말하나 마나 자동차기업이 우선이니, 그럴 것이다. 세상이 변하든 말든 만들던 대로 만들어도 여전히 팔리면 기업이 좋은건 당연하다. 이런데도 더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보수 정치인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민생 우선이니 서민을 위해 일한다고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이 버스를 탈 때는 어떤 이벤트가 필요할 때 뿐이다. 국민 세금으로 제공되는 대형 승용차를 타는 그들은 자동차기업의 눈 밖에 날 일은 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만 선진국을 따지는, 돈이 최우선인 국가에 사는 곧 60대가 되는 50대 택배노동자의 몸은 저상버스가 선진국 진입의 관문이고, 경로우대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제도와 시설의 변화 없이 입과 눈으로만 떠드는 경로우대는 거짓환상일 뿐이고, 몇 푼 쥐어주는 교통보조금은 노인의 입을 닫게 하는 잠금장치로 작용된다. 힘겹게 버스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면서도 버스의 문턱을 낮출 정치인을 뽑을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치를 걱정하는 늙은이들이 넘쳐난다. 곧 유령이 되어 돌아다닐 것이다. 일상이 달라지지 않는 한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저상버스가 다르냐고? 타보면 안다. 얼마나 편한지! 계단은 명백한 차별이다.

#대만 #타이베이 #저상버스 #이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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