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커브
감기가 다 나은 건 아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아 프리 다이빙 연습에 나갔다. 동료의 권유로 머리로 입수하는 ‘헤드 퍼스트’를 해봤는데, 이퀄라이징이 완벽하지 않아 귀속이 아팠지만 참을만했다. 다리로 입수하는 레그 퍼스트에 비해 훨씬 재밌고, 6m 바닥을 손바닥으로 찍고, 물속에서 머무는 순간이 좋았다. 감기 여파로 콧물이 나와서 코를 풀었더니 피가 섞여 나왔다. 어~ 뭐지 싶은데 동료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코피가 계속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서 그 뒤로도 헤드 퍼스트 고고!
3일이 지나도 피가 약간 섞여 나왔지만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어 그러려니 했는데 동료가 중이염 올 수 있다 해서 휴무일에 병원을 갔다. 의사도 프리다이빙을 하는지, 아는지 발살바 호흡 같은 프리다이빙 관련 용어를 쓴다. 논리적 완결성이 뛰어나야 상대를 설득하고 신뢰도가 높아지는 줄 알지만 실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단다. 나와 같다는 동질성을 느낄 때 상대의 말에 끌린단다. 아직 진료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의료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 지 모르지만 그와 무관하게 의사에 대한 신뢰감은 급상승 중이다. 귓속을 보더니 망설임 없이 ‘중이염’이란다. 당분간 물에 들어가지 말고 집에서 발살바 호흡만 하란다.
도서관에 들러 책 3권 반납하고 빌렸다. 제법 오래전 부터 파슈수 체인에서 체인통 벽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타고 다니는데 별 문제없고 고속에선 소리가 안 나서 그러려니 했다. 요즘 들어 그 소리가 잦고 커져서 혼다 대리점에 점검 예약을 잡았다.
마침 점심시간인데 회사 동료가 칭찬했던 밥집이 떠올라 찾아갔다. 부부인듯한 노인 2명이 하는 '소문난 흥부네집', 돼지 두루치기 정식(9천 원)은 2인부터 가능해서 김치찌개 주문. 쌀의 질이 좋은 편은 아닌 듯 한데 온장고에 보관했다 주는 공깃밥이 아니라 아무리 늦춰 잡아도 90년대 이후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봉밥'이 현실에 있었다. 8천 원에 이 정도 퀄리티의 반찬과 김치찌개, 또 하나의 동네밥집 발견한 기쁨도 잠시. 노부부가 얼마나 오래 하실까? 싶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라~
노을이 이쁜 도서관 들러 책 읽다 가려고 했는데, 두툼하다 싶을 정도 설문문항은 많지만 정책과 제도 개선의 진정성은 안 느껴지는 부산시 설문지 작성하느라 시간 뺏기는 바람에 커피 한 잔 마시고 혼다 대리점으로 갔다. 체인통을 열어보더니,
-아이고~ 체인이 이리 처질 정도로... 소리가 많이 났을낀데...
체인통에 붙은 검은색 플라스틱 마개를 여니 체인이 보이는데, 축 처져있다.
-네. 그래서 왔어요
-아니,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한참 된 건데요.
-그래서 왔다니까요 ㅎㅎ
-슈퍼커브는 다 좋은데, 체인통 때문에 바로 안 보이니까
-그럼 없애면 되잖아요?
-체인통 있는기 없는 것보단 체인을 보호하겠죠. 직관성 떨어지는 건 차주의 관심으로 충분히 되고요.
-아, 네...
온 김에 엔진오일 교환하고, 체인 관리를 위해서 체인루브를 한 번씩 뿌려주라기에.
-그건 어디서 사요?
-쿠팡에 체인루브 치면 바로 뜹니다
-아, 네...
-오토바이 타기만 하시고 아예 관리를 안 하시구나
-때 되면 기름 넣고, 오일 제때 교환하고, 그럼 잘 다니니까
-야(슈퍼커브)가 아무 말 안 한다고 차주가 무심하면 안 되죠
그러게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아무 말 안해도 괜찮은 게 아닐 수 있는데, 힘겹게 버티는 중일 수 있는데, 내 편리한대로 생각하고 그러려니 짐작했다.
2023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탔는데 1,000km마다 엔진오일과 필터(2,000km) 교환하고 주유하는 거 말곤 따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잘 달려주었으니까. 내가 힘들고 답답하면 시도 때도 없이 몰고 나갈 때마다 군말 없이 달려주면서 이 녀석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속에서도 체인통을 긁는 소리가 안 난다. 원래 이렇게 경쾌하고 맑은 소리를 가졌던 녀석이었는데, 무관심한 나에게 얼마나 서운했을까? 주차된 너를 한동안 쓰다듬는다. 앞으론 니가 내는 작은 소리도 귀담아 들을게. 그동안 무심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