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처음엔 대휴 1일, 어쩌다 보니 이틀이 되었고, 정기 휴무일이 붙어서 4일이 되자 이왕 쉬는 거 쭉 쉬자 싶어 동료와 휴무교환해서 6월 마지막주에 5일 휴무(대체휴무 3일 포함)를 만들었다. 딱히 뭘 하려던 건 아닌데 막상 휴무가 다가오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양이 많아지면 질의 변화가 생긴다. 오토바이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닐까, 국내 섬여행을 갈까? 하던 차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 없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오래된 관계를 끊자마자 대마도 배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바로 결제했다. 감정이 요동칠 때 익숙한 일상보다 낯선 환경이 일상의 감정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사이, 등잔 밑 같은 대마도를 선택했다.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전두환을 희대의 영웅으로 묘사한 대필 자서전 <황강에서 북악까지>에 나오는 강)이 있는 서부경남 산골소년이 바다를 실물로 본 게 1980년 즈음이다. TV(14인치!)에서 바다를 봤지만 화면 사이즈가 작았고, 본 적 없는 실물을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바다는 큰 강의 범주였던 것 같다. 실제로 본 바다, 너무 컸다. 부산항과 영도를 마주 보는 초량 산복도로에 살았는데, 어릴 때 동네 얘들이랑 놀다가 한 놈이 손을 눈 위에 대고 바다를 유심히 보다가 “저짝에 대마도 보이네” 하면 나를 포함한 다른 놈들이 “어데? 어데?”이러며 놈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쫓아 같은 포즈를 취하며 바다를 본다. 그러다 “어~ 어~ 보인다”, “와~ 진짜 보이네” 하는 놈들이 있었다.
남들 눈에 보이는 대마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답답했다. 어느 날, 대마도가 보인다고 맞장구쳤던 놈에게 ”니 진짜로 대마도 봤나? “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기에 안보이면서 와 보인다고 했냐니까, 갸가(처음에 보인다고 했던 놈) 보인다고 하니까, 다 보인다는데 안 보인다 하면 쪽팔리서 그랬단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날씨 좋으면 대마도가 보인다는 말을 흔하게 들으며 컸다. 부산에서 배로 1시간여를 가면 닿는 대마도, 제일 가까운 외국임에도 일본 본토를 대여섯 번 다녀올 동안 대마도는 한 번도 갈 생각을 안 했다.
비행기 오래 타는 게 부담되는 나이대지만 그렇다고 여행욕구가 사라지진 않는다. 인간관계처럼 여행지도 상호 합이 맞는 곳이 있다. 누구는 너무 좋은데 나는 불편한 곳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누구는 싫어할 수 있다. 다만, 여행지의 문화, 기후, 제반 여건 등 자신이 사는 곳과 다르다고 깎아내리고 차별하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무례한 것들의 얘기는 무조건 차단해야 한다. 낯선 곳에선 익숙했던 일상보다 생존본능이 민감해지므로 자신의 본성(감정과 태도)이 드러날 확률이 높아진다. 여행을 해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안다는 건 여행의 특별함을 포장한 게 아니라 여행의 낯섦에 대한 말이다. 낯섦엔 불안이 따르고 불안은 자신의 안전을 1순위로 삼거든.
너무 가까운 거리라 가볼 생각을 안 했고, 관심도 없었다. 가까워서 가기 용이한 낯선 곳이 어떤 지, 합이 맞는지 2박 3일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다음번엔 길게 머물자 싶어서. 쓰시마 부산사무소에 요청해서 우편으로 지도를 받고, 자료를 찾아봤다. 남북으로 긴 산악지형인 섬이라 남쪽 이즈하라와 북쪽 히타카츠에 숙소를 잡았다. 역사유적보단 자연환경이 우선이고, 해산물이 풍부할 것 같은데, 인구 소멸지역이라지만 사람 사는 동네면 술집이나 식당은 있겠지. 그럼 된다.
너무 가까워서 무시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런 점에서 가까우면 오히려 막대하는 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대마도 여행을 앞두고 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가까운 대마도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그러니 도서관의 힘을 빌릴 수밖에.
1. 대마도의 진실(한문희, 손승호 / 푸른길)
대마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코자 집필했다는 필자들의 애국심은 알겠는데, 애초에 애국심, 민족심 같은 정서가 없고 그 감정에 동의하지 않는 지라 불편할걸 예상했지만 관광가이드류(그마저도 너무 얄팍!)의 자료뿐이라 지리학 박사 출신의 필자들이 본 대마도는 어떤가 궁금했다. 필자들 말대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 해도 그건 봉건왕조 시절인데 그게 ‘우리’ 땅인가 싶다.
2.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이경수, 강상규,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 지식의 날개)
일본인 관광객 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고 한국말이 흔하게 들리고, 한국어 안내도 곳곳에 있는 곳이라지만, 엄연히 일본이고 한국의 섬처럼 대마도만의 일본문화가 있을 테니 궁금했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의 글을 그냥 모은 ‘편집자’가 없는, 수박 아무리 겉핥아봐야 수박맛 모른다.
3. 치킨에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가와카미 가즈토 쓰고, 김소연 옮김 / 문예출판사)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통닭을 시켜 먹는다. 공룡과 가장 닮은 신체 구조로 평균 수명이 최소 십 년은 된다는데, 정작 우리는 100일 전후의 닭을 먹는단다. 오직 먹히기 위해 사육당하는 닭에 있다는 진화의 역사가 궁금했고, 온갖 닭요리가 있다는 나고야도 궁금하던 차에 일본인 작가라 빌렸다.
지금까지 여기저기 여행을 제법 갈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의 도움과 생각났을 때 비행기표를 끊었기에 가능했다. 현재의 주머니 사정에 대한 걱정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여행의 출발만 늦춰졌고, 일상이 풍요로와지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