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하라
어느 여행지를 가더라도 하루는 자려고 한다. 하룻밤 잔다고 그 곳을 얼마나 더 알겠냐마는 최소한 그 곳의 낮과 밤은 만날 수 있기에. 숙소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토요코인 같은 호텔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익숙함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낯섦(여행의 기본요소인데)이 없기에, 한국에서도 접할 수 있는 호텔보다는 다른 형태의 숙소에 묵자 싶어 이즈하라에서는 세이잔지 템플스테이를, 히타카츠에서는 민슈쿠 니시도마리를 선택했다.
부킹닷컴에 소개된 사진은 자신들을 홍보하는 것이니 당연히 현재보다 좋게 보여진다. 그래서 실물을 보고 나면 기대치를 스스로 감가상각하게 된다.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오를 때만 해도 별로였는데, 방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도 넓고 스펙도 좋아서 의외였다. 여기저기를 제법 돌아다닌 편인데 사진 보다 나은 숙소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싶다. 굳이 아쉬움을 말하자면 3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데 많아야 하루에 세네번이면 되니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남녀 분리된 공동욕실의 뚜껑을 걷으니 뜨뜻한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이용하는 ㄱ손님이 없어서 개인 욕실처럼 느긋하게 누릴 수 있었다. 이즈하라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주변 반쇼인, 박물관 및 시내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어제 밤마실 나가기 전, 접수처에 붙은 아침 기도시간표를 보고 싹싹한 직원(스님인가?)에게,
-이거 참가할 수 있어요?
-오브코스. 명상이에요
-어떻게 하면 돼요?
-아침 5시 50분까지 여기로 와요
-오키
오늘 새벽, 어제 가지 않았던 방향으로 동네 한 바퀴 돌고 숙소 입구에 앉아있으니까, 승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스님이 일본말로 뭐라는데 못 알아듣자, 손짓으로 따라오란다.
-웨어아유프람?
-한고쿠
-어제는 재패니즈 여성 손님뿐이었는데, 남성은 유일하세요
벽간 방음이 거의 안 되는 건물이라 떠드는 한국인들 때문에 거슬렸다는 한국인들의 숙박 후기가 제법 있었는데,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니…
-서울?
-부산! ㅎㅎ
-명상은 포인트가 3개예요. 자세(가부좌, 손모양), 호흡(길게 받아들이고 내쉬고), 마음(릴랙스, 리프레시)
-네(한국이나 일본이나 가부좌를 트는데, 신체구조상 불편한데 어떻게 명상을 위한 자세가 되었을까?)
반야심경과 또 다른 축문이 적힌 소책자를 주더니, 어느 부분을 낭독할지 알려주고, 북을 치며 낭독하고, 중간에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낭독하더니 끝났다. 여기가 왜 템플 스테이일까 싶었는데, 템플스테이였다. 아직 아침식사 시간이 남아서 방으로 돌아오다가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대마도는 물이 풍부한 것 같다)을 이용해서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 떨어지는 물소리를 한동안 들었다. 세이잔지, 비 올 때 머물면 또 다른 느낌일 듯하다.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5명의 여성이 식사 중이고, 아침에 낭독과 명상을 진행했던 스님이 옷을 갈아입고, 아침식사 공양을 준비한다. 후기에 깔끔한 맛이라더니 옷~ 깔끔! 무엇보다 밥이 찰지고 맛있다. 대마도는 평지가 거의 없으니 쌀을 외부에서 가져올 텐데(나중에 자전거로 돌아다니다 논을 충분히 봤다), 맛난 쌀을 쓰는 게 분명하다. 밥 2그릇, 미소국 2그릇 클리어! 밥이 맛있으니 미소국만으로도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성 5명은 조용히 정말 말없이 장아찌 씹는 소리만 들리게 밥을 먹고, 밥을 다 먹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하하 호호 웃는다. 같은 동네 사람들 또는 친구 사이인 듯하다. 나이 들어도 같이 여행 다닐 친구가 있는 그들이 부러워 한참을 바라봤다. 밥 먹고 숙소를 바로 떠나는지 발 밑에 각자의 짐이 있다. 먼저 일어나며 일본말로 ‘식사하시는데 우리가 많이 떠들어서 불편했죠? 미안합니다. 이렇게 여행 온 게 얼마만인지, 들떠서 그래요. 양해해 주세요’로 추정되는 인사말을 공손하게 하고 간다. 얼추 비슷하게 알아들은 거 맞죠? 즐거운 여행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