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카츠
히타카츠항에서 20분 정도 걸어간다는데 자전거를 빌릴 거니까 상관없고, 주변이 정말 조용해서 옆방 얘기가 다 들린다지만(방음이 아예 안된다는 소리) 일본 가정식 아침식사가 좋다는 리뷰를 보고 선택했다. 실제로 일본의 가정에서 아침식사를 먹어본 경험이 많지 않을 텐데, 다들 가정식이 좋았단다. 내가 사는 한국의 가정식 아침식사는 빵 또는 밥에 국 하나 정도 아닌가?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츠까지 버스를 2시간 반을 타고 왔더니 몸이 지쳐서 숙소에서 쉬려고 체크인하러 왔는데 주인이 없다. 빌린 자전거로 히타카츠 여기저기를 1시간 정도 돌아다니고 돌아왔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기에, (서로 스마트폰 번역기로 대화)
-오늘 예약인데요?
-아~ 이상!
-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자전거 타고요
-자전거는 마당 안쪽에 대세요
공동욕실과 화장실을 안내하고, 머물 방은 침대가 아닌 이부자리를 까는 다다미방이다. 창가에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고 창 너머로 작은 동네 항구가 바로 앞이다. 세이잔지가 더 비쌌으니 스펙이 좋은 건 당연하지만 여긴 너무 '단출'해서 마음이 단순해진다. 비 오는 날 머물기는 여기가 더 좋을 듯하다.
-저... 내일 아침식사 예약하고 싶은데요?
-아... (망설이다가) 내일 아침은 안돼요
-왜요?
-오늘 손님이 이상 한 명뿐이라...
-아~
그렇다. 우리가 말해왔던 일본 가정식 아침식사는 그들이 아침마다 먹는 게 아니었다. 식재료를 따로 준비해야 하고, 손님용으로 내는 특별식이었다. 아침식사가 괜찮다 해서 선택한 숙소인데, 세상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듯 여행도 변수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왜 안 되냐 불만을 쏟아내 봐야 감정만 상한다.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이 근처에 식당이 있어요?
-있긴 한데, 요즘은 문을 닫았어요. 항 근처로 가야 해요
-아~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자)
-슈퍼마켓에서 파는 것도 괜찮아요
-(이 양반 뭐지! 싶지만 어쩌겠는가?) 네
자전거를 몇 시간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히타카츠항 근처에 있는 슈퍼로 갔다. 가격표나 상품명은 일본말로 적혀 있는데 들리는 건 한국말이고, 쇼핑하는 한국인들로 넘쳐난다. 순간 한국 슈퍼에 있는 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식사거리를 사야 하는데, 뭘 먹나? 돌아다니다가 초밥과 문어숙회, 도시락(해당 매장에서 만들었는지 밥에 온기가 있었다), 빵(교토 여행 때 슈퍼에서 사 먹은 빵이 너무 맛있었던 기억으로)을 사고, 맥주 4캔을 사서 돌아왔다.
공동욕실 탕에 따뜻한 물을 받고 오래간만에 자전거 타느라 혹사한 엉덩이와 허벅지를 풀어주고, 창가 테이블에 먹거리를 펼치고 혼밥만찬을 시작한다. 오오~ 슈퍼에 파는 초밥이 만원 안 되는 가격에 이렇게 맛나다니, 고슬고슬하고 찰진 밥에 토핑(뭐라 부르지?)은 맛있다. 문어도 엄청 잘 삶았서 쫄깃하다. 와하하~ 맥주를 부른다! 결국, 초밥과 문어숙회가 맛있어서 순삭 해버린 바람에 내일 아침에 먹을 도시락을 깠다. 일본 도시락의 퀄리티가 괜찮은 건 알고 있었지만 580엔에 이야~ 이럴 수가! 솔직히 세이잔지에서 먹었던 아침식사와 차이를 모르겠다. 세이잔지도 그랬는데 오늘 초밥과 도시락도 밥이 맛있다. 아무리 반찬이 뛰어나봐야 밥 맛난걸 못 이긴다. 밤에 이리 먹어서 될 일이 아닌데, 자전거를 몇 시간 타며 몸을 썼으니 괜찮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축연이 되었다. 어느덧 캄캄해진 밤바다에 일렁대는 물결소리만 찰랑찰랑 들리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이 온다. 슬픔도 잔잔하게 찰랑대다 잠드는 기분 좋은 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