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여행
별다른 고민 없이 대만 여행이라 얘기하다가 정작 가본 곳은 타이베이 한 곳뿐인데 전체를 지칭하는 게 타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타이베이 여행으로 바꿨다.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아무리 이쁜 배꼽이라도 꼴사납다. 여행‘후기’라는 이름 때문인지 갔다 온 지 한참 지난 뒤에 쓰고 고치고 있다. 예전에 잠깐 들른 걸 포함하면 타이베이는 두 번째다.
여행 가기 전에 어느 대학교수가 쓴 <대만산책>으로 대만의 음식을 접했고, 다녀온 뒤에 대만에 대한 관심이 생겨 <대만의 소년>, <대만사수업>으로 대만의 역사를 접했다.
첫 방문 때 고궁박물관을 가서 번갯불에 콩 볶듯 후다닥 둘러봤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다 못봤다는 아쉬움이 없었다. 구글맵으로 살펴보니 원주민박물관이 있다. 대만 기업가가 설립한 곳으로 지금껏 알았던 대만에 대한 생각과 지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편파적이었는지, 애초에 대만은 중국이 아니었다. 제주도가 한반도가 아니듯.
음식이 입에 맞고-아무래도 나에게 동남아인의 DNA가 있는 게 분명하다-, 기본 생활물가 싸고, 스쿠터 천국이라 좋다. 다시 가면 원래 대만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을 동부나 중국화가 시작된 가오슝 또는 타이난으로 가고 싶다.
어떤 신을 모시고 믿든 대부분의 종교 건물들이 화려하고 웅장하고 위압적인 건 세계 공통이다. 그걸 인정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화려할 이유가 뭘까 싶을 정도로 번쩍번쩍하다. 너무 화려하고 꾸밈이 많아서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요즘 한국에서 중창 불사하는 금박 칠한 절집은 명함도 못 내민다. 규모와 역사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네마다 서너 개는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딜 가나 크고 작은 사찰이 있다. 어느 사찰을 찾고 있는데 마침 그들이 모시는 인물의 탄생일인지 기념일과 겹쳐서 거리 행진, 폭죽, 공연 등이 열려서 시끌벅적, 요란법석이다. 안 그래도 사찰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대는데 구경 나온 인파까지 겹쳐 난리통이다.
대만 사찰은 도교와 불교가 섞였다는데, 종교 문외한에게는 불교적 요소가 어떤 게 있는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한국의 산신각이 불교가 한반도에 자리 잡을 때 현지 신앙을 수용한 결과이듯 대만은 현지 신앙의 힘이나 영향력이 여전하고 강력해서 오히려 불교적 요소가 현저히 줄어든 게 아닐까?
사찰 규모가 클수록 참배객 숫자가 많고, 영빨과 신앙의 깊이를 드러내는 방식이 화려함이 유일한 듯 극한으로 치닫는다. 용산사 같은 유명 사찰이든 동네 사찰이든 남녀노소 구분 없이 향을 피우고 뭔가를 빌고 종이돈을 태운다.
숙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오는 버스 타고 무작정 돌아다닌 날, 관광객 오지 않을 동네에서 사찰을 찍는데 동네에서 힘 쫌 쓰는 듯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그는 대만어, 나는 한국어로 대화했으니 추측이다)
-뭐냐?
-사찰 찍었는데
-왜 찍냐?
-니네 문화, 삶이 궁금해서
-함 보자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봐
-…
-갈게
절대성, 유일신을 추구하는 서양 종교가 상대성과 온갖 신이 넘쳐나는 동네에서 살아남으려니, 화려함으론 이 동네 종교업계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진작에 알아채곤 콘셉트 설정했는지 가톨릭교회가 아주 담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