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자 둘의 4박 5일 오토바이 여행
어쩌다가 여행을 떠날 때면 양말과 속옷은 물론 여분의 옷에 혹시나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이런저런 짐을 더 챙긴다. 그렇게 챙기다 보면 불룩해진 트렁크를 닫기 힘들어 꾹꾹 눌러가며 용을 쓰곤 했다. 그렇게 혹시나 싶어 챙겨간 짐은 역시나 한 번도 꺼내지 않고 그대로 되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여행업자와 여행자로 여기저기 떠도느라 짐을 싸는 일이 잦아졌다. 현실을 벗어난 일탈, 해방, 자유라는 여행을 떠나면서 현실을 그대로 담은 짐의 무게로 움직임은 더뎌지고, 챙긴 짐이 많은 만큼 생각은 복잡해진다. 딱 필요한 기본만 챙기고 이게 굳이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들면, 가방에서 바로 뺐다. 정 필요하면 현지에서 사자, 그렇게 마음을 바꾸니 떠남을 준비하는 시간이 줄고, 한결 수월해졌다. 이제는 떠나는 당일 아침에 후다닥 챙겨도 불편 없이 지내다 온다. 속옷과 반바지, 윗옷 하나 빼곤 따로 챙길 짐이 없어 4박 5일인데도 20리터 가방이 홀쭉하기에 볶은 커피콩과 드립세트를 챙겼다. 취향은 못 버리지!
2일 차 아침, 커피콩 갈아서 스텐망에 드립커피를 아침식사로 대신하고
07:10 알프스모텔 출발
09:30 동해 근처에 왔는데 배가 고프다. 삼척까진 1시간 정도 더 가야 해서 아침밥을 먹기 위해 동해로 들어왔다. 경험상 뭘 먹어야 할지 별다른 정보가 없을 때 관공서 근처를 간다. 맛집은 아니어도 동네 사람들이 가는 식당이 있다. 그렇게 시청 근처를 훑다가 발견한 낡을 대로 낡은 뚝배기해장국 간판,
-식사됩니꺼?
-예
뭘 먹을까? 벽에 붙은 메뉴판을 찾는데,
-우린 뚝배기해장국 한 가지만 해요
-아, 딴 건 아예 없어예?
-예, 32년째 그거만 해요
-2그릇 주이소
지금껏 먹은 뼈다귀해장국에 비해 국물이 깔끔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다시 출발
11:30 주문진 도착, 시장 휙 둘러보고 출발
13:00 속초 도착, 요즘 유행하는 오래된 건물을 커피집으로 만든 곳에서 아아 마시며 푹푹 찌는 더위 속을 달리며 달궈진 몸을 식힌 후 14:20 속초 출발, 막힘없는 국도를 달리는데 눈이 감긴다. 아니! 오토바이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달리는데 잠이 올까 싶지만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한 게 인간이다. 멀쩡한 상태로 달리다가 어느 순간 휘청거리는 느낌에 번쩍 정신이 들고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잠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그 아찔한 순간을 두세 번 겪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15:30 인제 요양원 앞 국도변에 멈췄다.
-형, 오늘 중에 서해까지 가려면 최소 5~6시간은 더 가야 할 텐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제?
-그러게. 버스에 몇 시간 앉아 있어도 피곤한데, 우리 벌써 6시간을 달렸어
-일기예보상으론 내일부터 호남과 남부 지방에 폭우가 내린다네
-줄곧 달리려고 타는 게 아닌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줄 몰랐네
-우리 차가 70km 이상이 안되니까... 그만큼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어쩌까?
-속초로 돌아가자. 내일 강릉 구경하고 경주까지, 다음날 부산 돌아가면 어떨까?
-그러자
결국 '777'루트는 중단되었지만 이틀 동안 몸이 지칠 정도로 오토바이를 탔으니 아쉬움은 없다.
아바이순대집들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그리 길지 않은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어서 우리 집으로 오라, 막걸리 서비스준다 호객행위를 해댄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어디를 가던 이 골목에 있는 집을 갈 텐데, 다 같이 호객행위를 안 하면 될 텐데 이렇게 경쟁을 하게 되었을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아바이순대가 다른 지역 순대와 뭐가 다른 지 모르겠다. 동그랑땡처럼 지져주는 오징어순대, 느끼해서 별로다.
무엇보다 속초에서 잊을 수 없는 건 라온호텔이다. 호텔 외관벽에 가격은 모텔, 시설은 호텔이란 현수막을 걸어뒀는데, 니미럴~ 가격은 호텔(온돌방 7만 원), 시설은 여인숙이다. 지금껏 묵은 숙소 중에 가격 대비 최악이다. 현관문 열면 방이 한 눈에 들어오는 개방감, 화장실 문이 잘 열리지 않게 한 보안성, 물이 줄줄 새는 샤워기 덕분에 호스를 수시로 잡아야 하는 긴장감, 이불보 두 개 깔면 방이 꽉 차는 공간감을 준다. 그렇다고 주변에 관광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쁜 건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투덜투덜 되면서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