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뻔뻔할까?

50대 남자 둘의 4박 5일 오토바이 여행

by 딜리버 리

눈을 뜨자마자 빗소리가 들린다. 환기구 용도가 분명한 쪽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빗줄기가 제법 굵다. 어허~ 그러거나 말거나 커피는 마셔야지, 정성 들여 커피를 내려 마시고, 주섬주섬 우의를 꺼낸다. 2년 전, 우중 라이딩 중에 바퀴가 살짝 미끄러지며 큰 사고가 날뻔했다. 안 그래도 바퀴폭이 얇아서 안정성이 떨어지는데, 비 오는 날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08:50 속초 출발,

09:30 낙산사 도착, 바다를 내려보는 전망대스런 위치에 있어서인지 비가 오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근래에 절을 가본 적이 없어 다른 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절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를 배치해 뒀고, 2층 누각에서 무료 음료를 제공하고 누구나 쉴 수 있다. 신도증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부대중을 위한 절, 좋다. 비 내리는 창 밖을 내다보다가,

-형, 그런 사람들 있잖아. 왜 저렇게까지 망가질까 싶은 사람들...

-정치인들 말이가?

-아니, 정치인 아니어도. 저 사람이 내가 알던 사람인가 싶은...

-있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헐뜯고, 욕하는... 부끄러움을 몰라서 아닐까?

-정말 부끄러움을 모를까?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뻔뻔해지는 걸까? 뻔뻔한 짓을 하면 자신이 부끄러운 건 인지상정 아닌가?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진 않잖아, 시간이 지나도.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지 않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알잖아. 그게 불편하니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거 아닌가? 죄책감이 사라지잖아. 그래서 사실을 숨기고, 회피하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역으로 화내고, 결국은 기억을 조작하는 것 같아. 자신의 뻔뻔한 짓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건 뭘까?

-얻긴 뭘 얻어. 쳇바퀴 속에 갇혀사는 거지.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부끄러움과 뻔뻔함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며 수다를 떠는 50대 남자 둘, 얼마나 절에 어울리는 대화인가! 비는 그칠 기미가 없지만 마냥 머물 순 없기에 길을 나서야 하는데,

-오늘 어쩌지? 하루 종일 비오겠는데...

-형, 오늘은 강릉까지만 가자. 오죽헌, 경포대 들리고... 재충전의 시간, 어때?

-그러자


13:10 경포해수욕장 앞 해물칼국수, 배가 너무 고파 허겁지겁 먹었지만 맛은 그냥저냥이다. 지금은 커피도시를 내세운 곳이 여럿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진 강릉이 이름을 날렸다. 보헤미안과 테라로사가 그 선두에 있었고. 여기저기 체인점을 뻗은 테라로사는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그저 그런 맛이라 패스, 보헤미안 경포점이 근처에 있어 갔다. 드립으로 내리는데 나쁘진 않다. 그렇다고 뛰어난 건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런 건가? 경포대에 올랐더니 경포호 입구에 괴이하게 들어서서 풍경을 해치는 건물이 있기에 검색했더니 호텔이다. 어떻게 건축허가가 났을까? 강릉 시민들은 에펠탑처럼 강릉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을 기대한 걸까? 자본과 공무원, 시민의 부창부수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배를 가르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오늘은 어디서 자나? 경포호 근처에 모텔촌이 모여있어 4군데를 갔는데 성수기라며 10만 원을 대수롭지 않게 부르는데 어이가 없다, 시설이라도 좋던가! 다들 뻔뻔하기로 작정했나?


18:30 마지막으로 방문한 세빈호텔, 여느 모텔처럼 닳고 닳은 손님맞이가 아닌 주인장의 태도가 좋아서 숙소로 결정했다. 3박 숙소를 정리하면,

-울진 알프스모텔 온돌방(5만 원), 요즘 모텔 시세가 얼만지 모르나 3~4만 원 정도면 될 듯하다. 시설이 낡고 비좁았지만 바로 옆 해산물맛집 지중해가 있어 좋다. 아침에 보니 모텔을 매매로 내놨다.

-속초 라온호텔 온돌방(7만 원), 지금껏 다녀본 숙소 중에 최악이다. 다른 방은 어떤지 모르지만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다.

-강릉 세빈호텔 트윈 매트리스방(7만 원), 샤워 물줄기는 약하지만 씻는데 지장 없다. 창 밖으로 백두대간의 산(오대산인가?) 능선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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