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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면은 곱빼기, 쌀국수는 갑도이

밀면, 쌀국수

by 딜리버 리

어제는 20킬로 넘는 게이밍의자(시킨 고객님들~ 일평생 탈탈 털려라!)를 계단 위로 힘겹게 들고 간 김에 엄궁에서 밀면 곱빼기로 여름철 택배족의 필수음식을 섭취했고, 오늘은 강원도까지 갔다 오느라 고생한 파슈수 오일과 필터 교환하고 세차한 김에 쌀국수 먹으러 신평시장 갔더니 문이 닫혀서 장림시장에서 쌀국수 곱빼기를 먹었다.


점심시간대인데 손님 한 명 없는 한적한 식당 안,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점심을 먹고 있다.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유지가 되나 싶은데,

-(손짓과 더불어) 식사돼요?

-(젓가락질을 여전히 하며) 네

오~ 손님은 손님일 뿐 이런 태도 좋아! 날씨가 너무 더워 분짜를 먹을까 싶어 메뉴판 뒤적이는데 없다.

-분짜 없어요?

-(비빔쌀국수 가리키며) 비슷해요

-(그냥 쌀국수 먹자) 곱빼기로 주세요

고개를 갸웃하기에 손으로 크게 원을 그렸더니 주방에 뭐라 뭐라 한다.


파파고에서 곱빼기를 베트남어로 찾아서 gấp đôi 보여주자, 오케이, 더블이라며 주방에 다시 얘기한다. 잠시 뒤, 국물이 안보일 정도로 지금껏 먹은 중에 양이 제일 많은 쌀국수가 나왔다.

-(고수를 가리키며) 더 주세요

-(의외라는 듯) 고수요?

-네

-쌀국수 좋아해요?

-네

-베트남 갔었어요?

-네. 하노이, 사파, 하롱베이, 짱안…

-(엄지척 하며) 오~ 짱안?

-ㅎㅎ, 어디 출신이에요?

-호찌민

-한국은 언제 왔어요?

아직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지 뭔 말인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대화는 끝났다.


베트남 공산당의 개혁개방 정책을 뜻하는 ‘도이머이’가 생각나서 혹시나 싶어 찾아봤더니, 도이는 변경한다, 머이는 새롭다로 ‘쇄신’을 뜻한단다. 갑도이에서 갑은 두 배, 도이는 변경한다니까 곱빼기! 이제 베트남 쌀국숫집에선 망설임없이 ‘갑도이’, 외국어는 반복하지 않으면 바로 까먹는데, 먹는 것과 관련되면 의외로 잘 잊히지 않는다. 먹는건 생존과 직결되서 그런가? 어쨌든 면을 좋아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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