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자신들이 사는 곳을 ‘영도공화국’이라 부르며 으슥대던 이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은 진작부터 명확했지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연이은 군사쿠데타로 ‘공화국’은 아직은 낯설고 '민주주의'가 우선되어서인지 개념도 불분명했던 것 같다.
초량 산복도로에서 마주 보이는 섬이 영도다. 영도에 사는 그들과 바다 건너 맞은편 초량에 사는 내가 산복도로 아래위의 다닥다닥 붙은 무허가 작은 집에 살긴 마찬가지였지만 초량은 그냥 초량일 뿐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에 특별한 ‘명칭‘을 붙였다. 부러웠다. 아마도 공화국‘빠의 시작은 그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매일 볼 수 있는 섬이었지만 갈 일 없었고,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일테니 궁금함도 없었다. 궁금함이 없으면 감정도 없다. 나름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나서 정작 내가 사는 부산은 거의 아는 게 없다 싶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보다 앞선 이유는 유일한 친구가 떠나고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시점부터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슈퍼커브를 구입했고, 휴무일에 집에 머물면 생각지 않은 감정에 북받치는 일이 왕왕 생겨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동수단으로 나다니기 시작했다.
페친 덕분에 알게 된 #비주류_사진관 보려고 오토바이 타고 영도로 쓩쓩~ 웬만해선 슈퍼커브가 못 가는 길이 없는데, 불규칙한 계단이 있는 좁고 비탈진 골목길이라 걸어야 했다. 골목길 군데군데 여러 작가의 사진 작품이 걸려있는데, 명색이 야외전시인데 형식이 많이 아쉽다. 정한 바 없이 이리저리 걷다가 집과 집 사이에 난 틈으로 예전에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 조선소 크레인보다 더 높은 아파트로 바뀐 모습으로 보인다. 조선산업이 한창 번성했을 때 영도의 크고 작은 조선소와 관련 업체에선 노동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먹고살려고 영도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어쩔 수 없이 전망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산 위쪽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을이 만들어졌고, 산복도로가 생겼을 것이다.
감천문화마을을 비롯해 영도, 초량 산복도로 등 전국 대부분의 ‘도시 재생’은 인스타 놀이하기 좋은, 뷰 좋은 카페로 득실댄다. 영업시간엔 사람들로 북적대다가 영업 종료 후엔 작은 소리라도 나면 소스라칠 정도로 고요함뿐인 테마파크 같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떠났고 돌아오지 않는다. 떠난 이들이 돌아올 마음이 없는 도시재생은 재생불가다. 지난 삶이 지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기록은 기억으로 남으니, 남긴다.
지난번에 문이 닫혀 못 먹었던 옥이네에 갔다. 돼지국밥집인데 물회를 한다. 둘 다 먹어보고 싶은데 50대의 위장으론 혼자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함께 먹어야 단단해진다는 말이 있나 보다. 한때는 두드려대는 망치질로 하루 종일 깡깡댔을테지만 조선소가 거의 사라져서인지 한낮의 태양빛만 쨍쨍하다. 선박 관련 공구를 제작하는 공장들 사이, 좁은 골목안에 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공장들이 한창 깡깡대던 시절에 낮에는 구내식당을 겸하고, 퇴근 후엔 소주와 막걸리로 한낮의 고된 노동을 풀던 이런 식당이 제법 있지 않았을까?
뚝배기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가 보온성일텐데 그 뚝배기를 가스불에 올려 펄펄 끓여 나오는 국밥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입천장 홀랑 까질 정도로 뜨거운 음식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고 음식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한다. 적당하게, 적정하게는 음식에도 적용된다.
옥이네
1. 돼지국밥은 싸고 푸짐해서 먹었던 건데, 만 원짜리 국밥집이 심심찮은데 8천 원!
2. 부추(부추) 절임을 한가득 줘서 오랜만에 더 달라 안 했다. 돼지국밥엔 정구지!
3. 국물이 담백하고 플라스틱 국그릇에 담겨 나와서 첫술부터 먹기 편한 온도다. 오도방때문에 소주 못 먹는 게 슬플 뿐.
4. 요즘 돼지국밥집 메뉴판엔 돼지(고기만) 국밥, 순대국밥, 섞어 국밥 등 여러 종류를 나열하는데, 여긴 종류가 딱 하나. 내장을 포함해 이것저것 여러 종류가 들은 것을 알아서 준다
5. 돼지국밥 충분히 만족. 다음에 방문의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