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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팽현숙 순대국밥

by 딜리버 리

몇 년 전, 경기도 광명에 예닐곱명의 동료와 2주간 배송지원을 왔었다. 첫날이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체한 듯 속이 답답하기에 화장실에 가서 구토질을 하고 나오다가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식당 바닥에 주저앉았다.(생각했는데 동료들 얘기론 식당 바닥에 풀썩 쓰러지며 기절했단다) 동료의 도움으로 119에 실려서 근처 병원을 갔다. 수액 맞으며 2시간 정도 누워있으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의사는 기립성 저혈압인데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혹시나 큰 탈이 날까 싶어 동료가 회사에 보고했고, 이런저런 통화가 몇 번 오가고 난 뒤 부산으로 복귀했다. 갑자기 쓰러져서 복귀했다면 엄마와 S가 놀라고 걱정만 늘 텐데, 내가 조심하면 될 일이라 지원 업무가 필요 없어져서 빨리 돌아왔다고 얼버무렸다. 그 뒤로도 타 지역 장기지원을 뽑았지만 몸 상태를 확신할 수 없어서 신청을 안 했다.


이제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부산에 있을 이유가 없어져서 몇 년 만에 서울 장기 지원을 신청했다. 이전 이력 때문에 못 간다고 하면 배송난이도 최고 수준의 현재 배송구역보다 힘든 데가 있냐 따질 생각이었다. 출장일이 다가와도 가타부타 말이 없고,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기에 장기지원 자체가 취소된 줄 알았다. 대마도를 출발한 배가 부산에 도착할 즈음 관리자 전화가 왔다. 휴무일에 전화하는 일이 없는데, 뭐지?

-여보세요?

-전화되는 거 보니 한국 도착하셨나 봐요. (벌써 소문이 돌았나보다. 부산 남자는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부산말이 무뚝뚝할 뿐이다. 입이 얼마나 싼 데!)

-네. 부산항 다와갑니다

-일요일 서울 출발입니다

지난번 공지했던 서울 배송지원 2주 출장이 확정됐단다. 예전에 엄마가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아들이 걱정돼서 사주를 봤는데, 역마살이 엄청 세고 중 팔자라 했다며 오히려 걱정이 느셨는데,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2주의 여행을 또 간다. 여행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갑다.


같이 온 2명의 동료는 몇 번 지원을 왔던 경험자들이라 주소만으로도 숙소가 어딘지 알고 있었다. 한 명은 본인 차에 자전거를 싣고 다니며 휴무일에는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 또 한 명은 아내와 1년 넘게 세계여행을 다녀왔지만 밥도 시켜먹을 정도로 방밖을 나서지 않는 집콕러다. 남부터미널 근처의 숙소는 방이 어둡다는 것 외엔 혼자 지내기 넉넉했다. 어떤 이는 잠자리 바뀌면 잠을 못잔다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잠을 못 잔 적이 없으니 잠자리 바뀌는 걸 신경 쓴적이 없다. 동료들이 남양주에 있는 팽현숙 순대국밥집이 맛있다, 먹어보면 안다, 서울 지원 오면 꼭 간다기에, 40여분 차를 타고 갔다. 첫날은 재료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아서 허탕치고 근처 국밥집에서 먹고, 둘째 날 다시 갔다. 따로국밥으로 나오는데 순댓국에 든 고기가 엄청 많다. 지금껏 먹어본 국밥 중에 고기량은 제일 많은듯 싶다. 국밥 가격이 비슷한데 고기가 이렇게 많을 수 있나 싶은데, 대부분의 고기가 살코기에 자투리를 모았는지 자잘하다. 국물은 깔끔하다. 숙소 근처에 있으면 자주 찾겠지만 40여분 차를 타고 와서 먹을 정도의 가성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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