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촌 삼계탕
휴무일에 서울역사박물관, 국립미술관을 가려고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류가헌이 멀지 않으니 여기까지 온 김에 사진 전시를 보자 싶어 자하문 방향으로 걸었다. 햇볕은 쨍쨍, 등에 땀이 배어 나올 즈음 도착했는데,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아니라 그냥 '여름 휴관' 현수막이 걸려있다. 햐아~ 자신의 보좌관에게 추잡한 갑질을 해댄 장관 후보자를 보면서 인간의 품격은 재산, 직업, 학력과 별 관련 없는 걸 확인했다.(이 글을 쓰는 동안 사퇴했다.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걸까?)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전부라는데 류가헌 휴관에 갑자기 갑질이 생각났을까? 자신의 지위나 처지가 상대보다 높거나 낫다고 생각할때 갑질을 해대는 형편없는 것들이 꼴보기 싫던 차에 자신의 조건과 환경을 타인에게 맞추고 눈치보지 않는 ‘여름 휴관’같은 당당함이 반가웠다. 갑질은 당당하지 못한 것들이 하는 비겁한 짓이다.
다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게 재미없어서 골목길로 접어들었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토속촌 앞이다. 몇 번 올 때마다 긴 줄이 늘어져 있었는데, 점심시간대를 한참 지나서인지 문 앞이 한적하다. 갑자기 지난 3일간 힘든 택배노동으로 고생한 몸을 격려해줘야 한다는 측은지심에 날씨도 한여름인데 50대의 몸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며칠 동안 서울의 비싼 밥값에 후달리며 어느 정도 적응됐다 싶었는데, 후와~ 삼계탕 2만 원이다. 물 반 고기반이라더니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이다. 한국말, 중국말, 동남아시아말이 자연스레 들려오는 다국적 식당이다. 아시아계 관광객에겐 이미 인증샷 성지가 되었는지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삼계탕 국물을 한 입 떠 넣는데, 키야~ 소주를 안 시킬 수가 없다. 건너편에 혼자 앉은 젊은 여성이 삼계탕을 앞에 두고 이걸 어째 먹어야 하나 멈칫대는 것 같아,
-안녕하세요? 일본인? 중국인?
-안녕하세요? 중국인
-삼계탕은 처음?
-처음
젓가락으로 집은 닭다리를 입에 넣었다 뼈만 뽑아내자,
-오~
-(인삼주 잔을 들며) 치어스~ 해브 나이스 트립
-(인삼주 잔을 들며) 치어스~ 땡큐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다. 역사박물관이라 생각했던 위치는 사직단이었다. 구세군 건물 1층에 올드보이들이 머물던 올드한 커피집이 있었던 게 생각나서 왔는데 가게가 바뀌었다. 커피맛은 올드보이 시절보다 훨씬 낫다. 몸의 기억이 오래가는 건 분명하다. 역사박물관을 후다닥 둘러보고, 덕수궁에서 천천히 느릿느릿 산책하며 머무는 사람들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