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퇴근을 기다리며 옆에 누워있던 동료가 "행님, 정년퇴직 언젭니까?" 묻기에 안 따져봤다니까 "인자(지금은) 퇴직 후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해서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려 한다니까 "너무 준비가 없는 거 아닙니까?" 하기에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그리 살아지지도 않잖아 했더니 "하기사! 내가 택배 할끼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하며 그때 해도 늦지 않겠다며 돌아눕는다.
현직 판사가 보기엔 65세가 고령인 지 몰라도 몸으로 먹고사는 택배족은 60에 정년퇴직하면 고령이고 노령이고 가릴 것 없이 또 다른 밥벌이를 찾아야 한다. 100세 시대라잖아! 그래도 정년퇴직까지 수고한 몸을 위해 최소 3개월 정도는 밥벌이를 안 할 생각이었다. 뭘 먹고 살아야 하는 걱정 보다 뭘 하며 놀면 더 재밌을지를 상상했다. 지금껏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었고,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고 살아온 경험의 결과,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을 미리 준비하는 건 걱정의 기간만 길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라서 약간의 불안은 어쩔 수 없다.
활쏘기, 탁구 등 이것저것 기웃대며 나이 들어도 계속할 취미(놀이)를 찾던 중에 오토바이와 프리다이빙이 남았다. 몇 개월 동안 오토바이 여행을 다녀올까? 프리다이빙 할 수 있는 동남아(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도시에서 한달살이라도 할까, 아직은 몸에 불편이 없으니 오랫동안 걷는 장기 도보여행을 할까 이런저런 미래의 몇 달을 상상했었다.
작년 여름 동해안 라이딩 이후 일정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던 오토바이 파트너를 만났다. 혼자 노는데 익숙해서인지 인간관계도 좁으면서 그나마 있는 사람에게 연락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못하고 안된다. 파트너가 얼마 전에 바이크 투어를 하는 여행사 선배를 만난 얘기를 들려줬다. 풍족하진 않아도 오토바이로 여행하면서 먹고살면 재밌겠더라며 소형 면허 접수했고, 오토바이 기종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란다. 한때 여행업자였으면서 오토바이 투어 여행사는 생각지 못했다.
돼지국밥 성지순례 중인 관광객으로 득실대는 송정 3대 국밥으로 옮겨서 소주를 마시며 바이크 투어 관련 얘기를 나눴다. 전직 여행상품 개발자의 본능이 오랫만에 꿈틀대는데, 기분 좋은 이 감정은 뭐지? 어디 어디를 스쳐가듯 지나치는 투어링보다 체 게바라처럼 2인 1조로 오토바이 타고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고 머무는 프로그램은 어떨까? 여행상품명은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 시리즈, 참가자는 라이딩 일기를 쓰고, 그걸 책(또는 공동블로그 형태)으로 내면 어떨까? 자본주의에서 T셔츠 프린팅 이미지로 전락되었지만 오토바이 타는 혁명가 ‘게바라’가 여행사 이름, 미리 지었다. 지금은 아니어도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재밌겠다며 이런저런 상상을 늘어놓는 대화를 좋아한다. 그러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작년 속초까지 가는 장거리 라이딩때 슈퍼커브의 한계를 몸으로 느꼈지만 도심 라이더에겐 슈퍼커브로도 충분해서 기종 변경을 생각지 않았다. 파트너가 소형 면허를 신청했다니 생각이 들썩인다. 세상 일에 정신을 뺏겨 판단을 흐리지 않는다는 불혹을 넘긴지 10여년, 하늘의 명을 깨닫는 지천명을 넘긴지도 몇 년이건만 여전히 마음은 흔들리고 하늘의 뜻을 모르겠다. 애초부터 마음은 허약하다.
며칠 뒤, 띠리링 띠리링~
-어, 형!
-집에 왔나?
-어, 좀 전에. 뭔 일 있나?
-아이다. 집에 가는 길에 생각나서 했지
-아하하
-2종 소형 면허 땄다
-오호~ 겁나 마이 떨어진다던데…
-어. 마이 떨어지대. 우째 한 번에 됐다. 연습 삼아 했는데
-오토바이 타는데 자질을 타고났네
-내 오토바이가 무겁잖아. 그걸로 몇 번 연습하고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 또 하지 했는데... 됐다
-축하해!
-회사 사직서 냈다
-엥? 지난번에 관둘까 말까 하더니...
-어~ 이번이 관둘 시긴 거 같아 관뒀어
-이야~
-그 선배한테 가와사키 650을 중고로 받기로 하고
-우와~ 650! 50 넘으면 하던 것도 마무리하고 새 걸 안 한다는데, 멋지다! 새 출발 축하하고 잘될 거야
-고맙다
-이젠 아무 때나 오도방 탈 수 있네
-그럼. 아무 때나
앞으로 뭘 하고 살까 얘기를 종종 나누면 나는 그때 돼서 닥치면 뭐든 한다(또는 할 수밖에 없다)였고, 파트너는 계획이 필요했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선택의 시기가 오자 별다른 준비 없이 하던 일을 바로 관뒀다. 미래의 걱정을 미리 할 필요 없다면서도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에 목매는 월급쟁이 6년 차로 미래에 대한 불안만 커진 50대는 대책 없는 그의 결정이 마냥 부럽다. 이런 파트너, 흔치 않다. 귀한 존재다. 자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