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신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머무는 기존 SNS 계정을 이용하는 건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다. 내 잘못으로 현실의 관계가 부서지고 유지되지 않듯 온라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수록 최근의 일은 흐릿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져서 일기장을 겸해 새 계정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가끔 기존 계정에 들어와서 과거의 친구들의 근황을 엿보는데, 잘 지내는 듯한 모습을 보면 다행이다 싶고, 지난 시기 있었던 잊고있던 그들과의 기억을 알려준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2013년 12월 26일, 벌써 12년 전이다. 20여 일 여행을 떠나는 지라 전화하셨다가 연결 안 될 수 있고, 연락드린 지도 오래돼서 전화를 드렸다.
-접니더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전화드린다 하면서 매번 까먹고...
-별일 없으마 됐지요. 철도파업이다, 뭐다 하면서 세상이 하도 시끄러븐데, 연락은 없고 해서 뭔 일 있나 걱정했지요.
아들의 과거사와 성격으로 마음고생을 하셨던지라 아들을 존칭으로 대하는 대화법은 세상사 시끄러우면 더 걱정이 많은 줄 뻔히 알면서 연락 없는 아들의 무심함을 에둘러 꾸짖는 엄마식 훈계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전화를 하지 그랬는교?
-전화했다가 안 좋은 소리라도 들리마 더 불편할끼고... 올 때까지 기다맀지요. (당신의 깊은 마음을 뭔 수로 헤아릴까?) 얼굴 한번 안보이주시나?
-아이고~ 진작 찾아뵀어야 하는데… 내일부터 1월 20일까지 외국에 가요.
-어디? 캄보디아?
-아뇨. 호주
-길게 가네.
-간 김에 찬찬히 보려고요.
-거는 마이 멀제?
-네. 우린 북반구, 호주는 남반구. 계절이 반대예요.
-아~ 바닷가에서 수영복 입고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하는 거 봤다. 그나저나 호주서 한국 사람이 죽고 다치고 하던데...
TV뉴스를 보다가 아들이 하는 일과 관련된 분야면 유심히 보고 기억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행동)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관심에서 사랑은 시작하지 않을까? 그가 뭘 하든 말든, 모르고 관심 없지만 사랑한다면, 그게 가능할까?
-저도 봤어요. 이번엔 일이 아니고 S랑 가요
-한국 사람이 외국에서 표적이란다. S가 예민한데 잘 챙기라. 만사 조심하고.
-네. 한국 뉴스가 오버하는 게 있는데, 잘 챙기고, 만사 조심할게요. 마침 시드니 사는 후배가 있어 현지에서 도움 받을 거예요.
-밥 잘 챙기묵고...
-아이고~ S랑 있는데 거를 리가…
-아~ 맞다. S가 그쪽 전문인데. 술 많이 묵지 말고...
-네. 그럴게요. 돌아와서 연락드릴게요.
-끊는대이~(엘베 탈 때까지 문을 붙잡고 계신 양반이 전화 끊을 데는 어찌나 칼 같으신 지… 갑자기 뚝!)
우리는 본다이비치 언덕에 앉아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쐬며 평화롭게 노니는 사람들을 한가로이 바라봤다. 얼마 전, 총기 난사로 본다이 비치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다는 여전할 텐데, 사람이 죽음과 공포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혐오와 차별은 어떤 이유를 붙여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다름과 포용은 여행의 기본이다. 여행자는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고 끊어야 한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한달살이 여행도 재밌겠다 하셨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아지신 뒤로 국내여행은 커녕 영화관 가는 것도 불편해하고 손사래를 치시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마침,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2일 청소하던 일도 관두기로 하셨다니 졸라서 국내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엄마를 집밖으로 모시는 게 여행자 DNA를 물려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