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 밖이어도 만날 인연은 만난다

프리다이빙

by 딜리버 리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인지 집안일 중에도 설거지, 세탁처럼 물로 하는 걸 좋아하고, 물을 주로 사용하는 화장실 청소마저 좋아한다. 그럼에도 체력 단련용 운동인 수영은 별로 당기지 않고, 여행지에서도 딱히 도움 되는 바가 없어서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는데도 가지 않는다.


바다에서 대략 난감했던 ‘실패’의 기억이 있다. 베트남 하롱베이 선박 투어 중에, 필리핀 세부에서 007 영화 촬영지에서 스노클링으로 바닷속 풍경에 빠져 정신없이 물 위를 떠다니다 고개를 들었는데 혼자였고, 순간 공포심이 밀려왔다. 구명조끼 입었고 수영할 줄 아는데 왜 그렇게 긴장하고, 무서웠을까? 객관적으로 충분한 스펙이었어도 마음에 공포(불안, 불신)가 스며든 순간, 객관적 사실은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2025년 4월 24일 처음 방문한 승산스포렉스 다이빙풀(풀식스, 수심 6m)은 집, 직장 다음으로 자주 가는 공간이 되었다. 범어사 갈 일 없으면 올 일이 없을 두실역 근처에 있는데 집에서 버스+지하철 타고 1시간여 걸린다. 사람 인연도 그렇지만 공간, 장소와 인연도 어쩔 수 없게 맺어진다.


감기 기운이 남아서 이번에 빠질까 하다가 지난번에 그 핑계를 대고 빠진 적이 있어 그냥 왔다. 머리는 몸을 움직이지 않을 핑계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몸은 그냥 하는 거다. 지난번 아이다 2 자격시험에서 제자리에 떠있는 게 안돼서 레스큐에 실패했고, 수심 12.9m는 찍었지만 덕다이빙 입수 자세가 엉망진창이었다. 오늘은 핀차기와 덕다이빙(시선, 입수자세)을 집중 연습하자. 혼자 연습하는데 계속 빙빙 돈다. 보다 못한 강사쌤이 "허리 힘주지 말고, 발등을 쭉 펴고, 고관절부터 다리 전체로!", 허리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진다. 일단, 허리 힘 빼고 핀차기를 하는데, "그렇지! 그렇게 계속요", 어~ 나도 뭔가 자연스럽단 느낌이 오는데, 아아아~ 또 빙빙 돈다. "아니, 좀 전에 하던 데로 하면 되는데 왜 자세를 바꾸세요?", "그러게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벽에 붙어서 발등을 쭉 펴고 고관절부터 움직이는 자세를 연습하다 어느 정도 된다 싶어서 벽과 떨어져서 핀차기를 하는데 이번엔 자꾸 뒤로 간다. "쌤, 이거 왜 이래요?", "앞뒤로 동일하게 차야죠."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치임을 깨닫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핀차기를 계속했더니 힘들고 재미없어서 입수 자세에 신경 쓰며 이퀄라이징 연습을 병행한다. 북항 마리나에서 수심 10m 이상을 연속으로 찍어서인지 레그퍼스트로 내려가는데 6m가 짧게 느껴진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이 세상의 전부라던데, 아직도 실내풀이 넓고 깊어 보이는 프린이에게 바다는 어떤 느낌일까?


레그퍼스트가 무난하게 되기에 다음은 헤드퍼스트로 내려갔다. 이퀄이 안 되는 느낌인데 평소처럼 귓속이 아니라 머리가 살짝 띵하니 아프다. 10m 내려간 게 일주일 전인데 갑자기 왜 이러지? 다시 3m 근처 내려갔는데 눈썹 위쪽 앞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바로 올라왔다. 되던 게 안될 땐 처음으로 돌아가서 레그퍼스트부터! 아주 수월하게 6m를 내려간다. 다시 헤드퍼스트! 마찬가지로 앞이마 쪽 통증이 심해서 바로 올라왔다. 덕다이빙도 마찬가지다. 이거 뭐지?

-쌤, 앞이마(눈썹 위쪽) 통증이 심해서 내려갈 수가 없어요

-감기에요?

-거의 다 나았는데...

-부비동이 막히면 그럴 수 있어요. 지난번 그 분과 증상이 비슷한 거 같은데요

-아~ 20m 찍었던 분(지난번 버디였는데 같은 통증을 얘기했었다)

신기한 건 레그퍼스트는 6m도 괜찮은데 헤드퍼스트는 3m도 못 내려가서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다. 이퀄 안돼서 귓속 아픈 건 비교가 안된다. 할 수 없이 재미없고 힘든 핀차기만 반복했다. 아~ 힘든 하루다.


직장 동료랑 다음번 자율연습 때 액션캠으로 서로 찍자 했는데, 하필 무거운 상품을 옮기다가 정강이 앞쪽을 쓸리면서 살점이 떨어져서 자율연습에 빠졌다. 2월 18일, 자율연습에 방수케이스와 부력봉까지 갖추고 액션캠을 들고 갔다. 아직도 이퀄라이징이 완벽하지 않고, 입수 자세도 부족한데, 한 손에 액션캠까지 드니 가관이다. 이퀄라이징 하랴, 입수 자세 신경 쓰랴, 촬영하랴 바쁘기만 하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영상을 여러 편 찍었는데, 그나마 볼 수 있는 건 2개뿐이다. 이런 실력으로 바다에서 찍을 수 있을까 싶다. 잠깐 고민한 결과, 내 수중에 없을 땐 신경 쓸 일도 없고 뭘 할 때도 자연스러웠는데, 수중에 들어온 걸 어떡하든 사용하려고 한다. 사용치 않으면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 액션캠도 마찬가지다. 내가 언제부터 동영상 찍고 그걸 이용했다고? 못 찍으면 안 찍으면 되고 내 눈으로 보려고 물속에 들어가는 건데! 3월에 가려는 세부의 모알보알 바다가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란다.

#세부 #모알보알


https://youtu.be/pkx40XYOX7k?feature=shared

https://youtu.be/toF_LhWrBWw?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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