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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Jan 05. 2024

너는… 내 편 맞지?

식구가 뭐여?

가족은 내 선택과 무관하게 맺어졌고, 친구(식구)는 내가 선택한 관계이다. 이런 관계를 통해 힘을 얻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의 선택이란 점에서 보면 어쩔 수 없이 맺어진 가족 보다 친구가 나에게 필요한 관계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을 1순위로 삼지만 과연 그 관계는 영원하고 괜찮은 걸까? 어쨌든 가족을 포함한 영원할(또는 하길 바라는) 관계가 뚝 끊어지기도 하고, 우연찮게 다시 연결되고, 그렇게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웃고 울며 살아간다.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워져 사실상 반쯤 가족인 관계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돌아봐 줄 수 있게 하고, 힘들어할 땐 응원해 주고, 기쁨은 같이 나눠서 증폭시키고, 새롭거나 재미난 게 있으면 같이 하자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럴 줄 아는 편안하고 상호존중하는 사이가 아닐까, 싶다.


가족이든 친구든 사랑이 기본 전제이건만 역설적이게도 무례하고 배려 없이 굴면서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게 가족, 친구다. 감히 밖에선, 남에겐 엄두도 못 낼 감정 배설을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쏟아낸다. 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처럼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병두가 몇 안 되는 자기 조직원들 앞에서 “식구가 뭐여? 식구란 같이 밥을 먹는 입구녁이다. 혼자 밥 먹겠다는 놈은 호로새끼", 그렇게 우리는 한 몸이고 원팀을 강조했건만, 병두는 믿었던, 내 편이었던 식구의 손에 죽는다.


그 행위가 남에게 비난받고, 자신 역시 그 행동을 용서할 수 없지만,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짓을 비열하다 하고, 배신자가 그렇다. 비열한 거리로 나서기 전에 비겁한 마음이 먼저 찾아온다. 부조리와 불편부당을 견디기 힘들었던 자신의 감정이 먼저이긴 하지만 내부 고발자는 공동체에 도움 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이익을 좇는 비겁한 배신자와 다르게 자신이 피해를 본다는 점을 알고도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비열함은 자신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오직 자신을 위해 행한다. 혹시라도 그 마음이 들킬까 봐, 그런 모습이 드러날까 봐 더 잔인하고, 더 격렬하게 자신이 배신한 사람, 관계를 공격한다. 그런 비열함을 통해 자신의 꿈꾸는 행복을 얻게 되리라는 허상을 쫒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자신이 가진 비열함은 사라지지 않으니-그 비열함을 통렬히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그러지 않는 노력과 정성의 시간만이 자신의 비열함에 대한 그나마의 미안함의 표현일 뿐-당장은 아니더라도 새롭게 연결된 사람, 관계에서도 드러날 수밖에 없고, 언젠간 파멸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나는 파멸했다.


나의 비열함 덕분에 상처받고 슬프고 아파했을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내내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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