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애잔함들이 후회로 남을 것만 같은데
일생에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불안하고, 신나고, 긴장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
가장 행복한 순간이 필름처럼 지나가며 돌이킬 수 없는 아쉬움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일?
이렇게 생각해보니 치열한 삶 속에 남는 건 순간순간 느껴졌던 감정들 그리고 시간의 톱니바퀴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성취감 또는 이루지 못한 아쉬움들 뿐일 테고, 그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만 확실한데 과연 죽음 앞에서 내 삶은 완벽했다고 또는 완벽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결국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과 어떻게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 낼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인생 역정의 최대 난제이고, 결국 그 발자취 가지고우린 추억하게 되겠지.
에필로그
아픈
우리 내 젊은 인생의 향연에 대해 노래한다.
너무도 복잡 다양한 이 세상가운데 나의 목소리를 담는다.
무엇을 향한 여정인가? 우리의 싸움은 각자의 그 치열한 인생 말이다.
누구도 우리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왔는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한 불안함으로부터 멀어지려고 그렇게 매일 힘들게 일하고 싸우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일터로 다들 나갔지만 아직 젊디 젊은 이 한 사람만은 작가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자신에게
부여한채 동떨어져 있다.
머릿속에 온통 복잡한 생각과 정보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지만, 세상 엔 아직 알리지 못했다.
신은 우주를 놓고 장난칠 리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양자물리학 같은 거창한 이론 없이도
이 현실에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언가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인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또 여기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왔는지? 단순히 주어진 삶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 매일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면서
때론 산재해 있는 문제들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저 우린 나그네 같은 인생인가?
어디인가? 여기는 지금? 누가 내게 말 좀 해줘라? 어떻게 하라고, 누가 내게 말 좀 해줘라? 어디로 가라고 누가 내게 말 좀 해줘라 제발!
현실 속에서 왜 이렇게 나만 팅 그러져 나와 이렇게 고민하며 한심한 소리를 짓거리고 있는 것일까?
현실도피?
세상 가운데는 지금 노력이라는 결실을 맛보는 사람보다 좌절과 실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당장 끼니를 걱정하며 삶을 살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이 돼지 같이 배부른 소리를 지껄이고 있네, 니 자신을 알라? 네,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는 모든 것을 존중하고 또 존중받기 원하며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꿈꾸는 심정으로 그 보단 지금부터 진짜 무엇을 이야기 하려 하는지가 내겐 더 중요하니까.
아직 영혼이어디에도 메이지 않은 탓 일까, 어찌 되었든 지구상에 공존하는 우리는 삶의 여정을 통해 순환되는 많은 상황과 조건 그리고 인연의 고리 가운데 물질과 정신 즉 내면과 외면, 세계 속 시간의 톱니바퀴를 아직 경험 중에 있다.
마흔 중반을 넘으면 세상을 향해 제법 덤덤해지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어려서는 한 가지 일로 설레고 작은 사건으로도 한없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다면 이제 그러한 일들로부터 점점 무뎌지고 있다. 마치 칼날처럼 말이다.
세상이 한없이 커져만 보이지 않는 만큼 한없이 두렵기만 했던 죽음의 크기도 조금씩 작아지는 것 같다.
벌써 부터 젊은 사람이 죽음에 대해 논할 만 한가 하겠지만, 만일 죽음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무의 통로 즉, 아무 생각도 존재도 느끼지 못한 채 영원히 자는 것 이 라면 여지없이 난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삶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자나 가난한자나 건강한자나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제부터 그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 삶 그리고 인간의 생각과 철학 관련된 많은 서적들을 접하다 보면 사상가와 철학가들의 생각과 나에 생각이 놀랄 만큼 일치되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하며, 켜켜이 쌓여있던 내 생각들에 위대함을 갖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이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남들과 다르게 내가 느끼는 석연치 않은 시작점은 바로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고 얽힌 세상의 질서는 과연 누가 만들고 어디에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중에서도 현실과 시간의 굴레에 대해선 더욱 깊이 심도 있게 파헤치고 싶어졌다.
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섭리에 대해서 난 세상 밖이 아닌 내 안에 연결된 그 보물을 찾으려 한다.
이것은 이 책의 가장 간단한 핵심 요약이다.
내가 존재함으로 세상이 존재한다. 또는 세상이 존재함으로 내가 존재한다.
세상을 어떠한 자세로 살아 갈지에 대해선 누구도 선 듯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이 불필요하거나 그저 세상 살아가기도 버거운 나머지 그런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채 살아가며, 결국 인생과정 중에 답을 얻는 것이 대다수 우리들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오랜 인고의 시간을 통해 제법 나이가 들어 느껴질 만한 경험과 시간을 넘어 삶을 통찰하는 측면에서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첫 번째 이유다.
오랜 시간이 흐르기 전에 내가 사는 삶의 목적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젊은 청춘들과 삶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적어도 세상을 마주하는 지혜를 통해 삶에 위안과 희망이 되길 바라며, 열심을 다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바친다.
시간은 거스르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시간을 기준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다는 말인데.
실은 과거는 기억으로만 회상되고 추억될 뿐 실은 우리 모두가 1초 후의 어떤 일도 예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데 어찌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그럼 이 시간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자신인가?
단 1초 후에 일도 모르는 채 앞으로만 전진하는 이 시간의 주인이......
나의 청춘시절은 단지 나에게 덤덤함을 하나 선물했을 뿐이다. 이제 제법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 깨닫기 시작했는지 꿈틀거리는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다 또다시 정적 속으로 수 그러 드는가 싶던 니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번지 듯 활활 타 오른다.
나는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 해답을 찾고 있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명쾌한 해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역시 삶에 대해 회의적인 질문들을 쏟아내기 여념이 없다. 생각하는 데로 살 것인가 사는 데로 생각할 것인가? 하늘에 무수한 별들조차 나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한 가닥 희망으로 다시 별을 헬뿐이다.
한참을 별을 헤고 있는데 별 하나가 진다.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 가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잃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내게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인생의 핵심 변수는 바로 시간이다.
정해진 시간 속에 살고 있고 그 시간마저도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당신 역시 삶과 죽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놓지 못하는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채 허둥지둥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묻고 싶다.
그 시간의 시작은 어디인가? 그 시간 안에 존재하는 이 지구의 탄생 그리고 생명체의 탄생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창조론? 진화론?
아주 간단히는 우주의 빅뱅에 의해서 생겨났거나 또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두 가지 이론인데,
진화론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치명적인 한 가지 허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최초의 빅뱅이 그럼 어떻게 생겨났냐는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에 대한 대답은 ‘저절로’라고 말한다. 그 최초의 저절로는 그럼 어떻게 설명이 되는 것인가? 저절로 말이다.
창조론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지으셨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전능자가 있다는 말이 오히려 내게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분을 객관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직접 보거나 느껴본 사람들이 있는가?
없다면 우리는 결국 믿음이라는 마음에 기인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말인데.
그럼 이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무엇에 이끌려 하루를 살아가고 마음은 또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의 주인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적어도 자신의 맘속에는 둘은 확실히 존재한다. 선과 악 또는 긍정과 부정
모든 존재를 인식함에 있어 두 가지 생각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마치 빛과 어둠과 같은 존재인데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사실 빛과 어둠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긍정 또는 부정하는 이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배제한 마음 표현 '좋다 또는 나쁘다' 라는 결정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존재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서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의 위치는 누구는 머리에 있다고 하고 누구는 가슴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작자가 생각하기엔 마음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고 하나는 머리요 하나는 가슴이라고
그 둘은 서로 각각의 생각을 갖고 대립하기도 하고 하나가 되기도 한다.
가슴속으로 진정으로 원하지만 현실과 직면하는 순간 머리에서 제어당하는 경우를 우린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이를 이성과 감성으로 구분 짓기도 한다. 이성적인 판단를 넘어 마음의 감동이 물결치는 순간이
살면서 종종있는데 그 순간의 힘은 인생 전체를 이끄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행동은 이성과 감성이란 두 마리 말에 이끌리는 쌍 두마차다. 이성은 작은 조랑말 일 뿐이고 감성은 커다란 코끼리와 같다는 지그문트 프로이드 말이 떠오른다.
어떠한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서도 그냥 보이는 물체로 인식할 것인지 내부의 오묘한 원리로 이해할 것인지에 따라 흔히 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관이 갈리기도 한다.
오늘 이렇게 쉽지 않은 복잡한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 것이 철학이나 물리학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험들과 실재 삶 속에서 분명한 이유와 동기 그리고
경험적인 해석을 통해 삶의 지향 점과 목표를 좀 더 구체화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반대로 삶의 목표를 확실하게 하는 것 말고도 늘 우리들 삶 속에 존재하는 공허함의 이유를 찾기
위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부디 그 시간을 이 작자가 많이 줄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공허함이 가지고 있는 의미 말이다.
사랑에 대한 갈증이나 물질로부터 오는 상대적 박탈감
하지만 정작 우린 그러한 갈등에 휩싸여 마음의 주인장임을 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주인의 위치를 찾는 교훈이 되기를
또한 삶의 중요한 의미를 깨닫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메타4 K작가>>
그동안 시간연금술을 소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브런치를 통해 공개되는 부분은 여기까지이며, 시간연금술 이후의 내용들은 책으로 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