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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금술사 #5

‘시간의 굴레’ 속에서 우린 현실에 어떤 문제나 대상에 사로 다. 그래서 ‘삶 이란 결국 자신 스스로와 맞서 싸우는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망각한다. 


기억된 감정이나 과거의 관점에서 생각을 불러 낼 수 있는 자신을 망각하고 어느 한 곳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은 현실 세계에 갇혀 있다는 의미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거나 두려운 한 상태에 놓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우리 몸이 자신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핵심을 스트레스가 차지하고 이를 관장하는 호르몬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우리의 몸이 호르몬에 의해 감각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 자신을 국한시켜 사건과 상황에 휩싸이고 우리 몸을 둘러싼 영역이 곧 의식이고 우리 자신이 된다고 착각에서 벋어 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오늘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나온 삶 가운데는 상당히 많은 분실물들이 쌓여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매일 일상에 승리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것들이다. 우리가 꿈꾸는 시간대로 잘 가고 있는지 모든 것이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그 진짜 행복은 과연 무엇인지? 이 질문에 대한 열쇠를 찾는데 그 해답을 멀리에서 찾는 것이 아닌 우리 마음 가운데서 찾아 보려는 것이다. 이제부터 천천히 이 글을 읽는 동안 그 해답을 찾고 우리의 내면과 마음을 여는 방법을 터득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과거에 해오던 습관들 또는 기억에 얽매인 감정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또한 일상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일깨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에 있어서 행복은 시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들의 행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행동의 주체인 우리 자신은 어떻게 더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지금부터 이야기해보자.


‘나 ’라는 존재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실 세계는 육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아가며 현실 속에 많은 시간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

하루 24시간 자신의 존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실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는 스위치는 바로 감정이다. 우리의 감정은 기쁨, 행복, 슬픔, 불안, 우울 등 주로 아드레날린, 도파민, 옥시토신, 테스토스테론,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들에 의해 몸이 감각적으로 반응하며 느껴지는 기분 들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일상 가운데서 그 감정을 조절하며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실제로 감정을 통해 어떠 기분이 들거나 결정이 필요한 판단을 내릴 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생각한다고 이야기하며 현실 속에 육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생각이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은 더 깊이 공감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곧 생각을 한다는 뜻이지만 과연 우리 일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식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자는 시간을 빼고 대게 많은 시간 자신의 존재는 망각되기 쉽다. 이것이 현실이 주는 함정이다.


현실 속에 우리 육체가 살지만 자아 즉 자신을 인식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세계의 생각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내가 산다는 의미를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현실에 살고 있는 육체를 정신을 통해 확인하고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뇌, 생각 그리고 마음은 즉 정신세계는 그럼 우리 육체 속에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처음부터 완전한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우리가 언어를 배우고 육체를 통해 학습된 경험과 기억에서 나오기 때문에 완전한 우리 생각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우리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육체를 통해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누군가가 시간을 만들어낸 것처럼, 인류기원 이후 스스로 살아가면서 생각이라는 존재를 깨닫고 발전시켜 왔을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 몸을 통해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현실세계와 감정과 기억의 집합체인 생각을 통해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정신세계 이렇게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는데 이를 간단히 물질과 정신으로도 구분 지을 수 있다.


현실 속에 자신과 마주하는 타이밍은 어떠한 상황이나 사건을 직면하고 뇌의 신호에 따라 호르몬이 분비되고 신체 반응을 통한 감정이 유발되는 순간 현실 세계와 정신세계가 마주하게 된다. 감정이 유발되는 순간 현실 속에 파묻힌 자신을 발견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시간의 굴레 속에 자신을 망각하기 쉬운 이유는 물질세계 속에서 정신세계가 지배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망각되기 쉬운 자아를 인식하는 방법 또는 현실세계 시간의 굴레 속에서 자신을 찾는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때문에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자아)을 인식하며 현실세계에서 보다 주도적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훈련하고 만들어 갔으면 하는게 이번 글의 핵심이다.


 우리 기억이 감정을 동반하는 것은 과거 연속적으로 기억되고 저장된 학습에 의한 것이다. 그 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현실 속에 다양한 측면들을 접할 때 결국 우리 내면의 정신세계에 저장된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의 자아 즉 정신세계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우리 현실세계 역시 조종이 가능하단 결론이다.


일상 속에서 어떤 일이나 사건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 뇌는 호르몬 분비를 통해 감정을 생산하고 이것은 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그 저장된 기억을 소환시킬 수 있는 건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이것은 감정 또는 저장된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는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원리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감정은 기억을 통해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맞닥뜨리는 일이나 사건을 통해서 뇌가 반응하는

순간 감정을 통해 어김없이 자신을 불러낼 수 있다. 정신세계 자아는 기억을 통해 불러낼 수 있다면 현실 세계에서 인식된 자아는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하다. 이 핵심을 간파한다면 우리 삶에 목적을 이루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삶 속에서 자신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순간은 바로 시간 속에서 우리의 감정들과 연결된다는 의미다.

일상 속에서 어떤 일이나 사건을 직면하게 되거나 혹은 과거로부터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감정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 생각의 주체가 바로 자신 또는 자아가 된다. 그리고 생각과 자아의

틈바구니 속에 시간적 의미는 굉장히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과거는 기억 그리고 현재는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반응들을 뒤죽박죽 꼬이지 않고 순차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 역시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현실에서 시간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다.

물질세계 즉 현실과 정신세계를 넘나들 때 시간은 우리가 혼돈 속에서 헤매지 않게 하는 잡아주는 유일무이한 척도와 약속이 된다. 우리가 믿는 현실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테두리에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세계는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고 만일 그 감각이라는 것이 착각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직 우리는 감정과 생각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뒤집고 시간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은 결국 허구와 상상의 세계가 된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하는 감각이라는 것이 상상이 주는 착각이라면 현실 세계는 가짜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속았다는 극단적인 가정 속에서도 결국 나 자신과 내 존재까지 부인하거나 의심할 수 없게 된다.

내 기억 속에 저장된 일들을 떠올릴 때 자신의 감정과 기분들이 시점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상들에 대한 자신이 행동과 반응을 일으킨 결과 들이다. 결국 이 감정을 표현하는 기분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 엔 시간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회상된 기억 속에는 감정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릴 때 감정은 자동으로 소환된다. 유일하게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은 감정뿐이다.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육체가 감각적으로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테두리를 우리는 물질세계로

규정한다. 반면 현실 속에서 감정과 생각을 기억하는 자아를 통해 정신세계 역시 우리는 얼마든지 인식하고 표출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과 공간의 굴레 현실 속에서 자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진정

나 자신이 삶을 살아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것은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한 또 하나의 필수 조건이 된다.  


결국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과 이성적인 사고의 조합 속에서 인생의 ‘감동’이 만들어지고 그 감동의 무게에

따라 행복이 저울질된다면 그 감동의 열쇠를 누가 쥐고 갈 것인지? 인생이라는 시간의 큰 테두리 속에 자신의 역할을 찾는 해답이 될 것이다.


인생의 감동은 반복되는 삶의 여정 속에서 만들어지고 우리의 행복 역시 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한다. 이 세상 가운데 자신(자아)을 인생이라는 시간 테두리 속에서 어떻게 컨트롤하고 훈련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바뀐다.


 지금까지 우리 자신을 물질과 정신 그리고 시간의 테두리 속에 어떻게 세울 것인지 이야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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