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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금술사 #4

이글의 생각에 단초

 

이야기의 결정적 실마리는 휴대폰 리셋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그 사건을 통하여 삶의 시간과 그 주인에 대한 생각을 필두로 우리 마음속 미지의 여행을 떠나 보려는 것이다.


풍요로운 삶이 주는 각종 기기의 편의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게을러진 게 분명하다.

컴퓨터의 발달은 각종 문서와 사진 음악파일을 압축하고 방대한 저장 공간을 제공해 주었지만 정작 그것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류하는 작업엔 길들여지지 않고

게을러 진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수많은 정보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며 이미 무의식적 집단의식을 가능케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사실은 실제로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지만 심각성을 고민하는 이들은 많치않다.


다시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로 돌아와 누구나 소중히 생각하고 가치를 두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필자는 특별히 생각을 담은 글이나 메모가 그러한 것이지만 여전히 그것들이 널 부러져 있게 내버려 두는 못 땐 습성이 남아있다.


삶속에 순간순간 신이 선물하는 놀라운 영감이나 감동의 기회를 놓칠까 간신히 적은 메모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불쌍한 주제에서 탈피하려 애쓰는 중이다.

나마 이런 글에 대한 남다른 강박 덕분에 얻은 교훈도 다. 작은 생각의 파편들이 모여 유기적이고 탄탄한 흐름이 있는 글과 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결국 소장된 정보들을 잘 아끼고 관리해 배열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소중하거나 특별하다고 믿는 내 머릿속 생각의 고리들을 연결지어 파생된 소산물을 잘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글과 책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실천하지 않았던 혹독한 대가로 문명의 이기 스마트 폰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취해 수많은 생각들을 메모장에 저장하고 그것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황당한 경험도 해보았다. 매일 손에 쥐고 언제 어디서나 수족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스마트 폰의 편리함을 누가 탓할 수 있게는 가 하지만 데이터 백업 동기화를 해놓지 않은 본인의 실수이고 어쨌든 그 과정 속에서 발단된 사건 덕분에 엄청난 깨달음이 하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시간의 무게를 동반한 스마트 폰 메모에 미련을 뒤로한 채 다시 한 가닥 한 가닥 생각의 줄기를 심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언제든 다시 머릿속에서 얼마든지 튀어나올 거란 자만심은 버려야 한다. 적어도 작가는 순간순간 그 메모의 위대함을 알고 소중히 관리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나는 새로운 관점에 위에 서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이다.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나는 우연히 스마트 폰이란 친구를 통해 기막힌 원리를 하나 깨우치게 되었고 이제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쳐보려는 것이다.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 줄기차게 치과를 왕래해야 하는 고령이신 아버지 기사 노릇을 자처하는 것은 그나마 자식 된 도리를 조금 감당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 그 대가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게으름에게 오래도록 자리를 내주고 있던 내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받았다.


오전 10시 치과 예약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고 늘 주차하던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켜놓고 지루함을 달래며 기다리고 있는데 평소와 달리 주차 관리인이 나와 차를 홀 깃 훔치는 시선이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내려서 차를 유심히 관찰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앞 범퍼에 흠집이 나 있다. 그 흠집이 크지 않은 터라 미심쩍음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라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는데 한편으로 마음이 자꾸 차를 향한 이러한 저러한 생각에 빠져 들게 하고, 좀 전에 차를 대고 아버지를 횡단보도 건너에 있는 치과 입구까지 배웅하던 상황으로 거슬러 약 10분 남짓 한 공백의 시간에 무슨 일 이 있었을까. 이런저런 상황을 끼워 맞추고 있는데, 문득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멈칫 멈칫하며 빠져나가던 흰색 벤츠 차량이 떠올랐다. 혹시 그 차가 내 차에 흠집을 남기고 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아까 주차장 관리인의 시선과 오버랩되며 주차비 정산할 때 묻기로 하고 다시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요즘 부쩍 오작동을 일삼는 이놈 아이폰도 병원에 데리고 가서 A/S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발걸음이 시선에 들어왔고, 발 빠르게 차에서 내려 주차비를 정산하며 내심 머릿속에 넣어 두었던 한 시간 전 상황을 주차관리인에게 물었다. 내차를 오전에 몰고 나오기 전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흠집이 있는데 혹시 그와 관련해 아는 것이 있냐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메모지를 내게 건넨다.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혀있는 쪽지를 전달하며 잠시 아버지를 배웅하던 그 공백의 시간 10분, 여성운전자가 차를 받고 나갔으니 전화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왜 내가 차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 사실을 묵과하고 있었던 것일까?  순간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앞서 내가 묻지 않았으면 그 내용을 나에게 전달할 의사가 없었던 것 인가하는 내심 의심 섞인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핸드폰으로 가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냥하게 그 사건을 인정하고 불편하지 않게 처리하라는 말로 위로를 대신하려 했지만 못내 그 주차관리인과 가해차량의 짜 옹에 관해선 정말 유쾌하지 않았다.


우선 스마트 폰으로 차의 흠집 부분과 옆 범퍼의 모습을 꼼꼼히 찍어 두었다.

그리고 인근 차량정비소에 차량 수리를 의뢰하려는데 직원은 선 듯 차량 수리비를 돈으로 받고 차량 흠집이 크지 않으니 좀 더 타다가 시간이 날 때 고치시는 게 좋겠다고 권유하고 콤파운드 소재를 천에 묻혀 범퍼를 딱기 시작했는데 훨씬 깨끗해졌다. 친절한 정비사 말이 그럴듯해 그럼 상대 보험사에 얼마를 청구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적정금액까지 설명해주며 명함을 건네준다. 이어  핸드폰 A/S를 받으러 갔고 한참을 기다려 휴대폰 증세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나니 수리기사는 초기화가 최상의 방법이라며, 이 스마트 폰의 모든 설정을 처음으로 돌리는 초기화 작업을 해도 괜찮은지 내게 물었고 오전에 집에서 나오기 전에 데스크 탑에 백업해놓은 상태인지라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수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초기화된 휴대폰을 다시 원상태 시점으로 돌리기 위해 데스크탑과 연결해 귀찮은 동기화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 삶에 기억도 이렇게 초기화하거나 원하는 시점으로 복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왠지 그 생각이 계속 맴돌며 꼬리에 꼬리를 물듯 시간의 문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곳에 살고 있고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 불변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종종 타이머신이라는 기계를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나에 관심을 끄는 내용은 단 하나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꿔놓는 타임머신이라는 기계가 있더라도 과거를 바꿔 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시간의 연속성이라는 특성에 묻히고 현재 그 일은 과거에 연결된 연속성으로 밖에는 인지 될 수 없다는 이다.

이렇게 연속성이라는 개념이 좀 더 특별하고 복잡한 일로 내게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핸드폰 복원을 마치고 요즘 어렵게 읽어 내려가고 있던 책과 씨름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 이튿 날 핸드폰 전화가 울리면서 시작된다. 상대 보험사 직원이라며 차 수리를 맡기었냐는 질문에 정비소 직원이 해준 말대로

나중에 시간 날 때 천천히 수리할 테니 정해진 수리비를 그냥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려면 담당자를 직접 만나서 차 상태와 합의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며 지역 담당자가 전화 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하겠다고 한다.

속이 좁은 건지 보험사가 제시하는 응당 당연한 절차임에도 불구 그 말이 내심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가해자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와 이렇게 흠집이 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법 일터 다시 과거로 회귀 그 시간과 상태를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긴다. 과연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힐까. 그 일은 이미 벌어졌음에도 불구 기꺼이 과거로 시간을 돌려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빠져드는 상황, 아마 우리 일상에 불편하거나 좋지 않은 일, 어려운 일, 슬픈 일,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어김없이 생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보험사 직원을 만나 서류까지 작성해야 하는 불편함과 피해자임에도 개인 신상까지 제공하고 사고를 모른 척하려던 가해차주와 주차관리인 꿍짝이 짜증으로 폭발해 해당 보험사로 전화를 걸었다. 사고가 난 불편함도 모자라 그쪽 방식대로만 고집하느냐며 불만 섞인 생각을 마구 퍼부었다. 시간의 연속성상 돌이킬 수 없다는 감정이 귀찮음과 불편함으로 엉켜 불만사항으로 이어졌고 상담원은 불편드려 죄송합니다만 정확히 사고 담당자에게 어떠한 내용을 전달하기 원하는지 되물었다. 사고 담당자를 만나지 않고 또 개인 신상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 보상이 이루어질 순 없는지 사고와 관련 스마트 폰에 저장되어있는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핸드폰에서 차량사고 당시 찍어 놓았던 사진을 찾는 순간 아뿔싸! 사고 난 당일은 오후 휴대폰 A/S 때 초기화 시점과 연결된다. 사고 당일 오전에 핸드폰을 백업해놓고 오후에 초기화했다가 복원한 이 핸드폰 상에는 정확히 오전 백업 시점부터 오후 초기화 시점까지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간 개념은 영원히 이 핸드폰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잠시 나는 또 멍하니 이 시간의 개념 속으로 또다시 헤엄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죽은 시간 그 시점과 그 시점이 연결되지 않고 영원히 사라져 버린 핸드폰 속에 시간을 생각하며, 현실에선 분명히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속에서 조작으로 인해 존재하지 않는 아니 없는 것으로 만든 현상에 대해 나는 좀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시간과 시간을 잇는 간극을 인간이 조정할 수 있다면 분명히 우리의 기억과 연관된 사건의 저장에서 지워져야만 한다. 즉 시간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과 사건을 기초로 그것을 머릿속에 저장할 때 적어도 시간의 연속성과 순차적으로 정확히 맞물리며 정의되는 시점을 갖는다. 적어도 시간이 우리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사건과 일치하지 않는 불일치를 현실에선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종종 나의 과거 사건에 대한 착각이 발생할 경우도 머릿속에 기억이 엉킨 것이지 시간의 연속성만큼은 불변하다. 하지만 이 핸드폰 속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즉 시간과 시간의 연속적인 불변성을 조정함으로써 중간에 있었던 메모리는 실제로 존재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진 상황.

우리가 그토록 지루하게 느끼기도 하고 촉박하게 느끼기도 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진리 앞에 반항이라도 하고 싶은 나의 속내를 일상에서 겪게 된 색다른 경험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나의 일상 속에 벌이진 작은 사건을 계기로 지금부터 줄기차게 써 내려가게 되는 이 시간의 진리와 연속성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지루함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게 되었다.


영원이란 개념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단적으로 시간의 개념이 깨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삶에서 시간의 연속성과 관련된 불변의 유효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분더러 반대로 여기서 주는 유한한 만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물질적인 유한한 모든 것들은 이 시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진된다는 것은 역시나 시간의 흐름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즉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면 소진도 없고 곧 정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간이 지남으로 점점 채워지는 것들도 존재한다.

그렇게 시간을 놓고 채우고 비우는 연속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곳. 이곳 시간이 존재하는 현실이라고 우리가 규정하는 장소와 시간에 의미와 상황들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사유해 보고, 따로 떼어내듯 시간과 분리된 생각과 현상의 의미들을 알아보는데 대해 이 복잡한 시간여행을 굳이 왜 하는지 현실에 만족하고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면 이 책을 덮어도 좋다. 그것은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끝에서 느끼는 인생 지루함의 의미를 덜어주고자 하는 작가 각고의 노력이니까 말이다.  


적어도 삶에 대해 느껴지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우선 변하지 않은 연속성시간 개념 속에 감추어진 의미들을 찾아내고, 현실 속에서 망각하고 마취되어 살아가듯 반복되는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이 평소 시간의 의미를 인지하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흘려보내는 중이다.  우리 각자 삶의 시간에 의미를 새롭게 되찾는 순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단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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