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비타민 같다고 했다.
옆에 있으면 기운이 난다고.
얼굴이 늘 밝아서 힘들다는 말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혜롭다는 말도 들었고,
마음을 잘 알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대화하고 나면 왠지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같이 있으면 재밌다고.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조용히 안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아이에게 별생각 없이 물어봤다.
"엄마가 어떤 엄마인 것 같아?"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별로 고민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T인 엄마? 항상 바쁘고 피곤한 엄마."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모를...
그 대답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T인 엄마.
차갑다는 게 아니라, 감정보다 현실이 먼저인 사람. 공감보다 해결이 익숙한 사람.
그리고 늘 바쁘고, 늘 피곤한 사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더 마음에 걸렸다.
생각해보면.... 나는
밖에서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는 사람이다.
웃고, 듣고, 공감하고,
때로는 꼭 필요한 말을 꼭 필요한 타이밍에 건넨다. 그게 억지가 아니라 진심이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꽤 잘 살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어깨가 내려앉는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몸이 먼저 소파를 찾는다. 말수가 줄고, 표정이 가라앉고,
아이들이 말을 걸어와도
"응, 어, 그랬어?" 하며 흘려버린다.
밖에서 남의 마음을 그토록 잘 알아주던 내가, 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아이들의 눈빛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비타민은 집에서부터였어야 했는데.
아이의 말은 서운함이 아니었다.
그냥 사실이었다. 그게 더 무거웠다.
감정을 담아 따지는 말이었다면
오히려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냥 담담하게,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엄마는 바쁘고 피곤한 사람.
그게 아이 눈에 비친 나였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꽤 자주 들어왔다. 그리고 그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좋은 사람'이
집 밖에서만 작동하고 있었다면,
그게 정말 좋은 사람인 걸까.
가장 솔직한 평가는 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온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바꿔보려 한다.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부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딱 3초만 숨을 고르고 들어가기.
아이가 말을 걸면 하던 일을 내려놓고
얼굴 먼저 보기.
피곤해도 "오늘 어땠어?" 한 마디는 건네기.
비타민이 되겠다는 게 아니다.
그냥, 바쁘고 피곤한 엄마 말고
조금은 다른 엄마이고 싶다.
물론, T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근데...
사실 엄마는 T 아니고, 대문자 F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