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해주는 겁니다.
대략 2년하고도 6개월 전부터는 산넘고 물건너 더운 나라에 있는 APAC 헤드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 전에는 전형적인 한국회사에서만 일을 했었지. 이 곳은 한국과는 뚜렷하게 다른 부분이 많고 결국에는 회사인지라 짜치는 부분도 많지만, 아직까지는 별탈없이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긍정적인 부분이 살짝 더 많은 것 같다.
회사에 들어온 직후에는 교육기간이 있다. 당시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실수"에 대한 태도. 한국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첫 출근했으면 그 일을 해본적이 있든 없든, 책상 하나 던져주고 무조건 시작해야한다. 이 회사 교육기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수를 통해 배우고 다시 그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것.
지금의 포지션은 이전에 해본 적이 없던 일이다. 광고 쪽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광고계에서 일을 했지만 퍼블리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고계에 있는 사람들도 딱 이런 플랫폼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내가 정확히 뭘하는지 잘 모르더라. 퍼블리셔 쪽은 인벤토리를 다루는 일이다. 런칭하고, 에러를 다루고, 최적화를 하는 과정에서는 엔지니어가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테크 지식이 필요하다. 뭔가 테크 지식이 있으면 프러덕트 팔아먹기에도 도움이 꽤 된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차고 넘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습득하면서 실수에 대한 마인드셋을 잘 잡는다면 자신감이 붙는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하나라도 실수가 있을까 더 소심하고 소극적이게 된다. 하지만 실수를 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 하나에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찾고, 물어보고, 결과적으로는 일을 익히는데는 훨씬 적은 시간이 든다. 그렇다고 맨날 실수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퍼포먼스가 좋으면 보상이 따른다. 당연한 얘기인 것 같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전형적인 한국 회사들은 퍼포먼스보다는 누가누가 아부를 잘하느냐로 보너스가 결정났다. 한국에서 일할 당시의 내 상사는, "애교가 없으면 일이라도 잘해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앞서의 질문에서 20초 정도 얼어붙고는 “그럼 일을 더 잘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애교가 없고 아부를 못하면 일 하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그 회사에서는 항상 인사고과 최하점을 받았다. 덕분에 성과급이라는 건 받아본 기억이 없다. 지금 회사에서는 탑 세일즈 퍼포머로 인센티브 펑펑 터트리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물론 외국 회사에서도 상사의 눈치를 보고 아부가 난무한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너무나 귀여운 수준이고, 자기 할 일 잘 하면 인센티브는 그만큼 나온다.
코로나 이후 1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다. 재택근무를 한다는게 과연 업무 퍼포먼스를 낮추는 것인가 - 개개인의 퍼포먼스에는 분명 차이가 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일하는 것은 똑같다. 요즘은 더 많아졌다. (빨리 팀원 뽑아주세요 제발...) 회사는 작년 코로나 기간 동안 연 최대 매출을 달성했고, 상장을 앞두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회사이기 때문에 코로나 덕을 본 것도 있을테지. 하지만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는 시간이 그대로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외국 애들도 상사가 퇴근 안하면 눈치보면서 퇴근 잘 안 한다. 상사에 따라 잦은 휴가를 쓰거나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다. 한가지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강압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 하고 그것이 미덕이지만, 외국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타겟 맞추고 숫자로 보여주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자리에 있지 않느냐고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리에 붙어있으라 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다.
회사와 나와의 관계는 결국 기브 앤 테이크 비즈니스 관계이다. 가족 같은 회사라 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나는 회사에 고용된 사람이기에 노동을 제공하면 회사는 돈으로 챙겨주는 거지. 퍼포먼스를 숫자로 보여줄수만 있다면 엉덩이 붙이고 있든 말든 상관없다. 대신 여기는 사람 짜를 때는 정말 이런 양아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얄짤없이 짜른다. 하지만 내가 벌어주는 만큼 회사가 안 챙겨주면 나도 회사가 필요 없는 걸. 당연한 사실을 한국을 떠나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