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
바람을 표현한 책, 여기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공간도 섬이네요. 『기적의 시간』에서 섬은 여름날 잠시 머무는 공간이지만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의 섬은 삶의 터전입니다.
섬은 바람이 많이 부나 봅니다. 아이들의 머리칼과 옷자락은 연신 바람에 나부낍니다. 풀도 꽃도 모두 바람에 흔들립니다. 마카펜인지 사인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색으로 사선이 죽죽 그어져 있습니다. 선의 각도로도 바람을 느낄 수 있네요. 바람이 많이 부는 섬,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차에 치여서 말입니다. 아이들은 범인을 찾아 나섭니다. 아이들은 어느 집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지 다 압니다. 그만큼 작은 섬입니다. 아이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세 명의 사람들을 찾아가 용기 있게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었다고. 당신이 범인이냐고.
택시 운전사 아줌마가 범인입니다. 범퍼에 와서 무언가 쿵 부딪혔는데 집 지하실 쪽으로 달려가 길래 괜찮을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괜찮지 않았다고 내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었다고 아이는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돌아와 비로소 고양이의 장례를 치러줍니다. 고양이라고 해서 대충 장례를 치르지 않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흙을 파고 꽃을 놓습니다. 종도 울립니다. 섬에 사는 어른들도 모두 모였습니다. 택시 운전사 아줌마는 미안한 마음에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기만 합니다. 집에 돌아와 고양이가 죽던 날 거실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아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는 그렇게 사랑하는 고양이를 떠나보냅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많이 만납니다. 각각 다양한 시점, 관계 속에서 반려동물과의 애틋함, 그들의 생명, 존중권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에서 다른 것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고양이든 사람이든, 어리든 하찮든 생명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반려동물을 생각하는 마음은 약자, 소수, 또 다른 생명, 자연, 환경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책에서는 당신이 범인이냐고 탐정 놀이라도 하듯 몰래 엿보고 화를 내는 아이들의 물음에 어른들은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해줍니다.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맞추어 이야기를 합니다. 뜬금없이 복권을 사라는 말에도 장난치지 말라고 면박을 주거나 꾸지람을 하지 않습니다. 그 복권은 어떤 복권이고 얼마인지 복권을 파는 너는 누군지 물어 봅니다.
아이들 모두 자전거를 탈 줄 압니다. 고물이 된 자전거를 직접 고칩니다. 못쓰게 된 자동차 바퀴를 화분으로 사용해 그곳에 꽃을 심고 멋지다 말합니다. 아줌마가 택시 운전사이고,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아줌마의 모습도 낯설지 않습니다. 이웃 아이가 키우던 고양이의 장례식에 어른들도 모두 경건하게 함께 합니다. 그리고 아직 용서하지 못한 아이의 마음도 헤아려 줍니다.
노르웨이 작가의 그림책입니다. 북유럽 스타일이 대세일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북유럽 스타일이 뭔지 잘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체크무늬 식탁보, 꽃무늬 벽지, 별모양 무늬 쿠션, 턴테이블, 꽃무늬 커텐, 페이지마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꽃무늬 천들이 창문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망토, 체크무늬 스웨터, 웨스턴 부츠, 나팔바지,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가게가 나옵니다.
겉으로 예쁘게 보이는 이것들과 함께 어우러져 어떤 분위기가 짧은 그림책 안에 가득합니다. 적어도 여기는 그렇구나. 어른들도 아이와 동물을 이렇게 대하는구나. 아이의 감정을 잘 들여다볼 줄 아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구나.
북유럽풍의 가구, 스타일로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치장한다고 되는 것 아닐 겁니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노력과 애정, 시간을 들여 조금씩 꼴을 갖추게 된 모습, 분위기일 겁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작은 섬마을의 풍경과 이야기가 이렇게 다른 문화와 만나게 합니다.
이 하나의 그림
내 고양이를 죽게 한 사람이
저기 와 있다.
고양아, 미안해
하지만 나는 용서할 수 없다.
고양이가 그립고 미안하다.
저 먼 발치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애도하는 어른의 모습
고양이라고
아이의 감정이라고
가볍게 치부하지 않는,
거리를 지킬 줄 아는 배려가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