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요

『곰과 작은 새』

『곰과 작은 새』글 유모토 카즈미, 그림 사카이 고마코| 고향옥 옮김| 웅진주니어| 2009


그림책은 그림과 글을 같이 봅니다. 물론 글 없는 그림책도 있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도 그림을 잘 볼 수 있도록 책을 펼치고 글을 한 자 한 자 읽어갑니다. 그런데 그림이 없는 페이지가 있다면 어떨까요? 눈으로는 그림을 보고 귀로는 글을 들었는데 갑자기 볼 그림이 사라졌다면요.


귀로 듣는 이야기가 더 또박또박 들려올까요? 아니면 눈으로 글자를 좇으며 같이 글을 읽어갈까요?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이거나 글자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갑자기 사라진 그림 때문에 시선이 가 닿을 곳을 찾지 못해 당혹스러울까요?


열심히 페이지를 넘기며 따라가고 있는데 그런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놀랐습니다. 이렇게 그림이 안 나오는 페이지를 넣은 그림책도 있구나. 작가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다른데 이 부분은 그림 없이 가자고 서로 상의하였을까? 글을 더 잘 전달하고 싶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설마 출판사의 실수는 아니겠지?


갑자기 그림이 사라진 페이지,

이야기만큼이나 놀라운 만남입니다.


사카이 고마코는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그림 작업을 하는 작가입니다. 종이도 갱지 같이 누렇고 프로타쥬처럼 우둘투둘한 질감이 느껴지는 그림들입니다. 색도 여린 핑크색을 빼면 검은색 하나입니다. 돌에 대고 문지른 것처럼 거친 질감, 석판화인거 같은데 정확치는 않습니다.


장면 장면은 둥그런 테두리 안에 들어 있습니다. 액자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은 그림들이지요. 그래서 오롯이 그림에 집중하게 됩니다. 요 동그라미는 다양하게 변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변주를 부리며 각각 다른 것에 주목할 수 있게 합니다.


위의 책 한 페이지, 사카이 고마코 그림
위의 책 한 페이지, 사카이 고마코 그림


테두리 없이 두 페이지에 걸쳐 그림이 그려진 부분들은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곰이 집에 혼자 있는 부분,

고양이의 연주를 들으며 작은 새와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하는 부분,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나는 부분.


그리고 작은 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바로 그 부분에 그림이 없습니다. 다음의 글만 있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가 볼까?”
들고양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너, 어디로 가?”
곰이 묻자,
“글쎄, 발길 닿는 대로.”
들고양이는 그렇게 말하고 바이올린 상자를 둘러멨어요.
“이 마을 저 마을 여행하며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내 일이야. 너도 함께 갈래?”
“어, 나도 함께?”
곰은 태어나서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답니다.
게다가 들고양이처럼 바이올린을 켤 줄도 모르고요.
하지만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일은 멋질 것 같았어요.


왜 이 부분에 그림을 넣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나요?



곰의 친구인 작은 새가 죽었습니다.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죽음에 머무르지 않지요. 곰은 친구를 잃은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런데 어떻게 슬픔을 극복할까요?


다른 친구들은 그저 빨리 잊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작은 상자 속에 고요히 누워있는 작은 새를 보고는 흠칫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곰은 화가 납니다. 집에 틀어 박혀 다른 이들과 만나지도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잊으라는 말은 하나도 힘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고양이는 달랐습니다. 새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애써 잊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잘 기억하고 즐겁게 추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후 곰은 볕이 환하게 드는 숲 속에 새를 잘 묻어줍니다. 돌 둘레를 꽃으로 예쁘게 꾸며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길을 떠납니다.


위의 책 한 페이지, 사카이 고마코 그림
위의 책 한 페이지, 사카이 고마코 그림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산문, 한겨레출판, 2018)에서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그림책에서 슬픔을 겪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웁니다.

굉장히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닥친 불행에 놓인 이를 만나는 것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말입니다.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까, 이런 말이 저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까,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해도 될까, 너무 많이 슬프지 않을까, 빨리 잊는 게 상책이지 않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잊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써 잊으라 하지 마세요.

떠난 사람을 추억하며 같이 눈물 흘리는 것이 그 사람의 슬픔을 나누는 일 같습니다.



이 하나의 그림


알고 보면

그림이 없는 페이지가 있었던 그림책

또 있었던 것도 같아.

아니, 많았을 수도.

그런데 왜 그렇게 화들짝 놀랐을까

이 페이지를 만났을 때

슬픔을 겪은 사람과 단 둘이 마주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어.


친구의 죽음

그림책의 그림 없음이

익숙하고 꼭 있어야 하는 것의

'부재'로 절묘하게 연결되어

더 강하게 다가왔을까?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그냥 느껴도.

그 어찌할 바 모르겠는 막막하고 낯선 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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