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Diary 1

거친 독서 일기

동네에 잘 가는 서점이 있었다.

큰 아이는 언제든 혼자 가서 1시간 여는 책을 읽다 오곤 했고,

작은 아이는 그곳에서 나는 냄새를 유독 좋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음~ 엄마 나는 이 냄새가 참 좋아.'

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 냄새에는 분명

오래된 종이 냄새, 퀘퀘한 냄새, 먼지 냄새 등이 섞여 있었을 텐데,

희미한 나무 냄새라도 나는 걸까?

내가 아이가 아니니

아이가 맡는 냄새가 어떤 종류의 냄새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여하튼 그 냄새를 좋아했다.


그 서점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코로나 19 의 불황을 이겨내지 못했다.

꽤 훌륭한 북큐레이션 서가들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쨌든 매출의 큰 부분은 참고서와 새학기 문구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매출이 안 났나 보다.

불광동에 모서점이 있으니 그래도 낫다라고 여길 수 있지만

마을에 자리 잡은지 10여 년이 넘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서점이 사라진 것이다.


그 서점에서 마지막으로 산 책 세 권이다.

서점의 마지막과 내가 책을 산 것과

무슨 관계가 있냐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마 서점이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애써 고르려고 하지 않았을 책이었을 수도 있다!

라고 연결 시켜 본다.


미안함과 의무감에

무슨 책이든 사야 겠다는 심정으로 두리번 거리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는,

누군가 추천도 했던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계속 망설여진다.

굳이 소장까지?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될 거 같은데?

그래서 청소년 문학 읽어본 지도 오래 되었고,

비교해서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내친 김에 두 권을 더 집어 들었다.

믿고 읽는 작가들의 책



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창비, 2020

김중미 <그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낮은산, 2016

송미경 <나는 새를 봅니까?>,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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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의 책은 가슴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다.

나는 그녀를 삶과 글이 하나인 작가로 기억한다.

실천하는 삶을 살고 그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쓴다.

그래서 읽고 나면 숙연해지거나 미안하거나

내 삶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읽지 못했는데,

고양이라...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에 유난히 흥미가 없지만

그래도 단단한 글을 느껴보고 싶어 선택했다.


송미경 작가의 이야기는 항상 기대된다.

일상에서 퐁퐁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잘 붙잡아

정말 자유롭게 이리 저리 엮은 듯한 느낌의 글들이 많다.

그래서 읽고 나면 유쾌하고 묘하다.

어쩔때는 음울하거나 씁쓸하기도 하다.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이야기를 주로 읽은 아이들은

송미경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그래서 뭐 어쩌라구요?

잘 모르겠다.

결말이 이상하다.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송미경 작가 또한 한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신간이네, 궁금하다.



세 개 다 청소년 문학으로 되어 있어서 같이 읽어보니 좋았다.

오래도록 동화를 써오신 분들이라 각자의 색깔도 확실해서

잘 차려진, 맛있는 음식 세 개를 먹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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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맨 처음 집어든 음식이 나의 입맛에는 제일 밋밋하고 심심하다.

새로운 조명에 의의가 있을지 몰라도

여인 세 명의 이야기는 예상 가능했고,

여인들 인생의 굴곡사가 진부하게 느껴진다.

아주 오래 전 읽은 김영하의

<검은 꽃> (문학동네, 2003)이

오버랩되며 생각났는데,

(이 책은 여전히 책장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기도)

김영하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에 비한다면

굉장히 부드럽고 담담하다.

다른 작가가 쓴 것이고

주제, 소재 다 다르니 당연할 테지만

책은 의의로만 읽는 것이 아닌데...

작가의 <밤티마을 큰돌이네> 시리즈처럼

선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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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집사의 시선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앞에는 조금 헷갈릴 수 있지만 읽다 보면 익숙해진다.

고양이들이 진짜 그런 마음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것도 같다 납득이 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명들은 살아가며 관계를 맺고

갈등과 부침을 겪고 위로와 치유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밀하고 촘촘하게 고양이와 집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면

서로의 말을 알아듣게 될 수도 있다는 약간의 환상도 가미된,

생명과 생명의 관계

삶과 죽음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얼마 전 반려묘를 키우기 시작한 지인에게 당장 선물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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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를 봅니까?

제목부터 오묘하지 않은가?

'나는'은

'나'라는 1인칭을 지칭하는 걸까?

'난다'라는 동사의 형용사 '나는'일까?

새가 나는 건 당연한 건데,

거기에 '나는'을 붙인데다

서술어도 '봅니까?'이다.

'봅니다'도 아니고.

누구한테 질문을 하는 걸까?


게다가 문학동네 표지 디자인 감탄스럽다.

뒤 배경이 되는 사진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 한다.

지은이와 출판사를 네모난 박스 안에 세로로 쓰고

건물처럼 보이는 그 위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하얀 새,

꼬리인지 날개인지 몸인지가 긴 하얀 새 그림에 가슴이 쿵한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 하나

표지 이미지조차 작고 섬세하다.


그래서 뭐라는 걸까? '나는 새를 봅니까?'는?

글을 읽어도 두 개가 중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딱히 어떤 하나를 지칭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단편 6개가 있는 소설집.

출판사 서평에는 이렇게 써 있다.

'가장 반짝거리는 농담,

아주 작고, 곧 잊혀도 되는 이야기'

굉장히 잘 잡아낸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곧 잊혀질지 모르는 작고 사소한 이야기지만

글을 읽는 순간 느낀 청량감이나

머리를 한 순간 띵 하고 울린 묘한 감정은

나의 머리, 몸 어딘가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아이들이

현실의 생활을 기반으로

단단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를 만나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이야기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꼼지락 꼼지락 발가락을 움직이며

코를 파며

잠시 해 보는 작은 상상의 세계,

그것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