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나누며 살고 있나요?
사는 이야기 1
by 어린이책 읽는 아침 Jul 5. 2020
마을로 이사온 지 3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첫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 방과후 전체 카톡방에 공시디를 구한다는 톡이 떴다. 기억이 가물한데,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가 있는 나에게 그 시간은 빨리 아이를 재우고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마음에 조급함이 가득한 시간이다. 집에는 공시디가 쌓여 있지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지라 가져다 주기도 가지러 오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거리였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나도 톡에는 아무도 답이 없었다. 나는 있다고 하지만 좀 멀다고 톡을 남겼다.
그는 바로 내가 원하는 장소인 집 앞 놀이터로 달려왔다. 연극 공연을 앞두고 있어 한창 연습을 하던 중 급하게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시디를 건네는 내 손에 쥐포가 몇 개 담긴 비닐 포장지를 쥐어 주었다. 급하게 와야 해서 마땅히 뭐 줄 것도 없고, 집에 남은 쥐포가 있어 가져왔다고, 몇 개 안되지만 구워 먹으면 맛있다고 이야기하고 급하게 사라졌다.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 저 사람은 나눔을 하는 사람이구나.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슥, 잘 하는 사람이구나.
집먼지에 덮여 쌓여 있는 공시디 하나 받는데도 이렇게 뭐 줄거 없나 살펴보고 건네 주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축구를 하고 오는 아이를 위해 밥을 앉혀야 했다는 것을. 점심에도 라면을 먹였는데, 시간은 없고 이런, 쌀도 똑 떨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한다. 멀리 갈 수는 없다. 가까운 곳에.
뚜껑이 있는 하얀 사기 밥주발에 따뜻한 밥 한공기와 내일을 위해 준비한 짜장 1인분을 같이 건넨다. 그러면서 곤약과 칠분도미로 만든 밥인데 아이가 잘 먹을까 오히려 걱정을 한다.
코로나로 공간 사용이 모두 막혔다. 선뜻 공간을 제안하고 그 시간을 위해 음악과 차와 돗자리와 캠핑 의자와 먹거리를 준비한다. 그 공간이 있으니까, 뭐, 자기도 함께 하는 거니까 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해보려고 한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날도 더운데 옥상까지 들고 나르고 왔다 갔다 하기를 몇 번이나 했을지. 그는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여기서 핵심은 '즐거운 마음'이다.
무럭무럭 자란 식물을 하나씩 잘라 나눈다. 식물이 죽지 않게 생수병에 담고 생수병의 가운데를 잘라 뚜껑처럼 열리게 해 식물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준비한다. 방법만 알려 줘도 될 텐데, 일일이 다 칼집을 낸다. 나중에 손을 든 사람을 위해 쪼꼬만 아이들까지 마련한다. 이 사람은 참 잘 아는 것 같다. 나눔이 그렇게 거창하거나 어여쁘게 포장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식물과 사람을 같이 생각하는 세심한 마음이 엿보인다.
사진: 나르샤
모임에 음식을 담아온 그릇을 보내며 누룽지를 한아름 넣어 보낸다.
철 지난 옷을 정리하며 하나 하나 사진을 찍어 올리고 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다시 하나 하나 아이들의 사물함에 넣어 놓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한다. 이것 말고도 무지하게 많다. 내가 살면서 나눔을 경험하는 일은. 이 마을에서, 이 사람들안에서.
반면 나는 참 나눔을 못한다. 특히 먹거리 나눔은 젬병이다. 먹거리 만들고 준비하는데 서툴고 힘들어하는 편이라 나눔까지 마음의 품이 가 닿지 않는다. 밥과 짜장을 건네 받은 그릇도 깨끗이 씻어 놓았다. 돌려 줘야 하는데, 나도 조 예쁜 그릇에 뭐라도 담아 돌려 주고 싶은데 그 안에 무얼 담아야 할지 당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우리 집에는 참 마땅한게 없다는 생각 뿐이다. 그러면 사려고 움직여야 하는데 또 몸이 잘 움직여지질 않는다. 그런 나눔에는 마음도 정신도 몸도 잘 움직이질 않는 거다. 그래서 나는 먹거리 나눔에 유독 감동을 더 잘 받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쥐포의 그 사람이 나에게 알려 주었다. 당신은 다른 나눔을 잘 하고 있다고. 한창 마음이 찌그러져 있던 때, 지금도 펴지지 못하고 꾸깃대고 있는데, 그가 그렇게 말해 주었다. 아, 그런가?... 뭔가 마음이 조금 위안이 된다.
그러고 보니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나눔을 하고 있는 것도 같다. 내가 좀 더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부분, 내가 좀 더 신경이 많이 가 닿는 분야에서 각자 다른 방식과 정도로의 나눔을 말이다.
그래도 나눔의 품이 넉넉한 사람들은 분명 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나눔은 뭔가 좀 더 근사한 걸 나눠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마음의 우려나 걱정이 크지 않고, 척 척 몸과 마음에 익은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나누는 것, 함께 하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들은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금 더 먼저 고민하고 그 길을 조금 앞서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모른척 해도 되고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기어코, 기꺼이 그것들을 감내하는 마음들. 나는 그 마음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사람에게 감동하고 그 부지런함에 감동하고 마음의 품에 감동한다.
그 마음에 감동받은 누군가는 조금씩 움직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 누군가가 또 움직일 것이다.
각자 할 수 있는 정도로
할 수 있는 만큼
서로가 서로를 서서히 물들이는 삶,
이렇게 함께 살며 배우고 커 나간다.
어른이 된 지금도.
사진: 하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