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은지와 푹신이』

은지와 푹신이.jpg 『은지와 푹신이』 글 그림 하야시 아키코|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1995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이 곳의 배경이 되는 곳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요.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모래언덕과 그 너머 바다를 마주한대도 그림책에서 처음 마주한 때의 그 느낌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림책에서는 고전 중에 고전으로 여겨지는 책입니다.

그림 대부분은 망원경 렌즈로 보듯, 액자 속 그림을 보여 주듯 원이나 부드러운 네모 틀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딱 두 페이지는 펼친 면 모두를 사용하였습니다. 넓게 펼쳐진 모래 언덕과 저녁노을이 지는 바다를 보여줄 때 딱 두 번. 은지와 푹신이의 모험 이야기를 읽으며 화면을 가득 채운 약간 빛바랜 모래 언덕과 그 언덕 너머 광활한 바다를 마주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이의 그림책에서 이런 바다를 만나리라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광활하고 막막한 느낌, 어쩌자고 이런 느낌의 바다를 그림책에……. 궁금해집니다.



은지와 푹신이는 할머니 집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습니다. 기차 여행 중간 간이역에서 도시락을 사러 갔다가 꼬리가 문에 낀 푹신이, 푹신이가 기차를 타지 못했을까봐 슬퍼하며 우는 은지, 은지와 푹신이의 우여곡절 기차 여행입니다. 하지만 우당탕탕 기차 여행은 아닙니다. 덜커덩거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처럼 차분하고 조용히 목적지에 다다릅니다.


KakaoTalk_20200525_144318536.jpg 위의 책 한 페이지, 하야시 아키코 그림


은지는 할머니 집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모래언덕이라는 표지판에 궁금증이 입니다. 모래언덕을 보고 가기로 하지요. 두 페이지 걸쳐 빛바랜 듯 여린 황토색의 모래 언덕이 펼쳐집니다. 은지와 푹신이는 뒷모습을 보이며 모래 언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처음이었을 겁니다. 이런 풍경. 은지와 푹신이는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뒤를 돌아 있는 은지와 푹신이의 시선과 같은 시선으로 우리도 그 풍경을 같이 바라봅니다. 조용히 말이지요. 발자국을 콕콕 찍어보는 은지와 푹신이를 따라 우리도 모래 언덕을 걸어갑니다. 그러다 다시 또 한 번 은지는 언덕을 올라가 저 너머에 펼쳐진 바다를 마주합니다. 은지는 또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때 어떤 개가 푹신이를 물고 가 버렸습니다. 은지는 정신없이 푹신이를 찾아다닙니다. 푹신이는 모래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간신히 푹신이를 꺼낸 은지는 모래 언덕을 서둘러 내려옵니다. 이제 어서 할머니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은지는 미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할머니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모래 언덕을 보고 가자고 했을까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맘을 아는지 푹신이는 은지에게 계속 이야기 합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말이지요.


신기하게 이 말은 은지의 마음 뿐 아니라 둘의 모험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줍니다. 푹신이를 업고 모래 언덕을 내려오는 뒤로 저녁노을이 지는 바다가 넓게 보입니다. 은지와 푹신이는 그 풍경 안에 작게 그려집니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긴장되고 힘겨운 여행이었습니다.


KakaoTalk_20200525_142841492.jpg 위의 책 한 페이지, 하야시 아키코 그림



모든 게 그럴 겁니다. 그렇게 나아가야 하겠지요. 조금 두렵고 힘겹더라도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꾹꾹 찍듯 스스로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누구도 대신 걸어주지 않고, 대신 어느 곳에 데려다 주지 않습니다. 그 곁에 푹신이 같이 마음 의지할 누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끔 막막하고 광활한,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는 풍경을 만나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잠시 쉬어 가도 됩니다. 모래사장에 하염없이 앉아 바다를 몇 시간이고 바라봐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면 역시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다시.


할머니를 만난 은지는 할머니 품에 안겨 울먹입니다. 할머니는 은지와 푹신이를 꼭 안으며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은지야. 잘 왔다. 자, 집으로 들어가자.” 이보다 더 안심되고 따뜻한 품과 말이 있을까요. 걸음을 걷는 우리에게도 가끔은 쉴 품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친 마음과 몸을 뉘일 곳 말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그 무엇이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와 쉴 곳 그것이 있다면 한낮의 여행이 조금 힘들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KakaoTalk_20200525_142841492_01.jpg 위의 책 한 페이지, 하야시 아키코 그림



이 하나의 그림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그의 풍경화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인물을 그림 앞에 배치하여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자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유도했다.


은지와 푹신이가 생애 처음 만났을 모래 사막을

우리도 은지와 푹신이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사막

둥그런 테두리 안에 그려져 있어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도 하다.


헉!

숨을 멎게 만들었던 그림

저 너머에는 바다가 있다.


은지 모래사막.jpg 위의 책 22~23p, 하야시 아키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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